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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6월에 쓴 글들

컨테이너 벽은 훌륭한 의사 표시였다.

[ 2008-Jun-11, 01시 31분] [ Category : 나른한 오후의 단상 ] [ 엮인글수 : 0 ]

촛불집회에 갔다가 좀 전에 집에 왔다. 경찰 추산 8만명이라는데 내가 도착했던 오후 8시 당시만 하더라도 30만명은 되는 듯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포르투갈전에 시청 앞에 거리 응원하러 갔는데 그때 못지 않거나 더 많은 사람이 있었다.

처음 향한 곳은 세종로에서 새로운 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명박산성이었다. 컨테이너를 쌓아 올린 커다란 벽이었다. 딱 보더라도 7~8미터는 돼보였는데, 첫 인상은 무척 삭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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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명박식)소통의 벽이라고 부르더라. 깨부술 수도 없고 밀어낼 수도 없는 차가운 쇳덩이 벽.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국민과 소통하지 않겠다는 굳건함을 느낄 수 있었다. 멀리서 찍은 사진으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거대하고 차갑고 굳건한 벽이었다. 더구나 사람들이 올라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인니 그리스(구리스)를 잔뜩 발라둬서 냄새도 안좋았고 어딘가 흉흉한 분위기 마저 풍겼다.

이번 6월 10일 집회는 이명박식 소통의 벽, 명박산성, 컨테이서 벽이 모든 걸 나타냈다. 그 많던 전/의경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고 시민들 스스로 세종로를 중심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컨테이너 안쪽에선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완벽한 무시. 벽.

이것이 바로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가 내놓는 대답이다.

덧쓰기 : 아예 컨테이너를 더 이어서 청와대를 컨테이너 벽으로 둘러쳐 시멘트로 막아버리고 이명박 공화국으로 대한민국 안에 속국으로 놓았으면 좋겠더라.

덧쓰기 : 사람들은 그 흉한 “벽”에 재기발랄하고 재치 넘치는 이야기들을 붙여 놓았다. 알록 달록한 게 꽤 괜찮아 보였다. 뷔세만씨 예술품과 비교해도 못지 않을 것 같다.

‘개미’는 되고 싶지 않았다.

[ 2008-Jun-02, 23시 52분] [ Category : 나른한 오후의 단상, 책 읽은 척 하기 ] [ 엮인글수 : 2 ]

한 젊은 병사는 갑자기 그 자리에서 ‘사생활도 없는 이 세상에서 나는 죽어서라도 공동묘지 아닌 개인묘지에 묻히고 싶다’고 말한다. (중략) 군사재판소는 그에게 사형을 내려 총살해버리고 만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에 그는(지노비예프) 전선으로 끌려갔다. 그에게는 적군 독일군에 대한 적개심이나 아군 소련군에 대한 충성보다는 오히려 스탈린 체제의 집단적 히스테리 조작의 기술이 눈에 보일 뿐이었다. ‘악’과 싸우는 ‘선’을 자임하는 일부 소련 병사들이 살육에 참여할수록 적병 사살 자체를 몸과 마음으로 즐기게 된다는 사실은 충격적인 발견이었다. 그 광경은 그에게 자신의 개성과 신념을 보존하려면 내면에서의 적극적인 저항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남겨주었다.

일탈이나 다름에 대한 의식 · 무의식적 공포와 사회적 분위기와 자신을 동일시하도록 만들어진 정체성은 군인들로 하여금 자진해서 희생할 욕구를 자아내게 했다.

그는 ‘닫힌’ 집단주의 사회가 갑자기 개방될 경우 ‘시류 따르기’에 길들여진 집단의 구성원들이 현실적으로도, 이념적으로도 서양의 노예밖에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중략) 집단을 현실적으로 떠나지 않고도 철저한 거리 유지와 도덕적 실천을 통해서 자신을 지키는 것이 그가 제시한 이상적인 방법이었다. (중략) 저자의 대안은 평범한 인간 이상의 힘과 용기를 요구했다.

문득 생각 난 박노자의 “하얀 가면의 제국” 책 내용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