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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7월에 쓴 글들

내가 책을 읽는 방법

[ 2008-Jul-18, 15시 41분] [ Category : Ego & Persona, 책 읽은 척 하기 ] [ 엮인글수 : 9 ]

얼마 전에 어떤 분이 내게 책을 어떻게 읽냐고 물어오셨다. 자신은 집중을 잘 못한다는 말에 오래 끌면 집중력이 흐뜨러지니 빨리 보라고 조언을 해드렸다. 오늘 문득 그 질문이 떠올라 다시 그 분의 질문을 생각해봤더니 “책을 읽는 좋은 방법”이 아니라 “내가 책을 읽는 방법”을 물어보신 거였더라. 내 엉뚱한 대답에 그 분은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미안한 마음에 내가 책을 읽는 방법을 써본다.

담고 추려서 모으기

난 책을 깨끗하게 읽는 편이었다. 책에 그때 그때 생각을 남기기는 커녕 밑줄 조차 긋지 않았다. 대신 따로 갈무리 해야 할 부분은 책갈피로 쓰는 종이 조각에 적어둔다. 132쪽 2번째 단락 시작 부분에서 두 세 줄 정도 되는 문장을 갈무리 한다면 p132 2단락—– 이렇게 표시를 하고, 더 길다면 p132 2단락———— 이렇게 표시를 한다. 단락 중간이라면 p132 2단락 4번째 줄——- 이렇게 하거나 p132 17번째 줄——- 이렇게 표시를 한다. 그런 뒤 이 색인을 따라 따옴글을 별도 공간에 모아놓는다. 예전엔 두툼한 공책에 모았다가 재작년부터 컴퓨터에 써넣는다.

되도록 책을 깨끗하게 읽은 이유는 나중에 다시 봤을 때 내가 남겨둔 표시에 생각이 휩쓸리는 걸 피하기 위해서였다. 시간이 흐르면 생각이 달라지므로(질과 양 뿐 아니라 방향성 등), 읽을 때 마다 새로운 눈으로 글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눈 흐름을 방해하는 표시가 없는 것이 나았다.

학창 시절부터 공부를 이렇게 했다. 책은 깨끗히 보되 기억하거나 따로 이해해야 할 시간을 가져야 하는 부분은 일일이 공책에 옮겨 적었다. 옮겨 적을 때 내 생각을 함께 정리해서 넣었으므로 원본 문장은 내 공책 안에서 사라지기 일쑤였다. 공부하는 시간은 무척 오래 걸렸지만 시간을 들이기만 하면 효과는 확실하게 보장이 되었으므로 공부 하려는 의지가 강할 때는 늘 이렇게 책을 내 공책에 풀어헤쳐 담았다. 정작 내 정리 공책을 내가 보는 일은 별로 없었다. 옮겨 적으면서 다 이해를 하거나 외워버렸기 때문에 다시 볼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내 정리 공책은 급우가 빌려 보곤 했다. 난 참 착한 짝꿍이었다.

요즘엔 책에 바로 밑줄을 긋는다. 삼색볼펜 학습법을 활용해서 빨강, 파랑, 초록으로 밑줄 긋는 의도를 구분한다. 그런 뒤 컴퓨터로 옮겨 넣는다. 예전과 다른 점은 단지 표시 방법인 것 같지만 아주 크게 바꾼 점이 있다. 예전엔 갈무리한 내용들을 책에서 어떤 문장을 찾는 데 쓰는 색인 모음이었지만, 지금은 다시 책을 열지 않아도 괜찮을만큼 정리하려 하기 때문이다.

방법을 바꾼 이유는 읽은 책을 다시 꺼내 읽는 일이 별로 없어서 그렇다. 읽고 소화한 뒤로는 어지간해서는 다시 그 책을 꺼내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생각이 바뀌므로 눈길을 끄는 부분은 매번 바뀌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더구나 난 글을 느리게 읽는다. 같은 책을 읽는 맛이 있긴 해도 적지 않은 시간을 써야 하므로 꼼꼼히 읽고 소화시켜서 다시 꺼내 보지 않게 됐다. 또, 비슷한 주제나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 있는 경우도 있어서 무슨 내용은 어떤 책에 있다는 식으로 머리에 담아두기 보다는 이런 내용을 책에서 읽었다고 기억을 간소화 한다.

느리게 읽되 오래 끌지 않기

책 읽는 빠르기는 절대 기준이 아닌 상대 기준에 따른 판단이므로 책을 느리게 읽는다고 말을 하기 애매하긴 하지만, 남들 하루면 읽는다는 책을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더 걸리거나 이틀에 걸려 읽곤 하니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에도 대체로 느리게 읽는다고 할 수 있다. 내용이 어렵고 쉬움은 별 관계가 없다. 눈으로 인지해야 할 개체 수에 많이 영향을 받는데, 하나 하나 뜯어 읽기 때문이다. 글자건 그림이건 상관 없다. 그래서 난 만화책도 남들보다 느리게 보는 편이며, 집에서 혼자 영화를 볼 때도 자꾸 전 장면으로 되돌아가거나 한참 앞으로 되돌아가며 봐서 많은 시간이 걸려서 해치운다.

하지만 오래 끌지는 않는다. 아무리 오래 끌어도 일주일 안에 마치려 한다. 내가 책을 손에 집어드는 건 호기심을 연료로 삼기에 가능하다. 다른 말로 흥미, 관심, 눈길 등으로 나타낼 수도 있는데, 어쨌든 눈과 손이 가지 않는 책은 당장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을 해결해주는 것이 아닌 이상 읽지 않는다(참고로 책을 읽으면 밥벌이가 해결되는 상황에 처한 적은 없다). 이 호기심이라는 연료는 고작 일주일 밖에 가지 않아서 책 하나 가지고 일주일을 넘기면 질려서 안본다. 중간에 책을 놓기도 하고, 남은 부분은 글자 읽는 데 의의를 두는 걸로 만족하기도 한다.

모든 책을 일주일 안에 끝내는 건 아니다. 식빵을 손끝으로 조금씩 뜯어먹듯이 처음부터 부담을 가지지 않고 글자 읽는 걸로 만족할 수 있는 책은 며칠이 걸리든 신경쓰지 않는다. 이를테면 원서나(내용 이해보다는 완독을 목표로 하므로) 소설을 들 수 있다.

간혹 느리게 읽다가 일주일 안에 마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도 있다. 주 내내 읽었는데 오늘은 금요일이고 남은 쪽은 2/3이라면 일주일을 넘기기 쉽다. 그럴 때는 주말에 몰아서 본다. 이렇게까지 일주일이라는 기간을 지켜야 할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난 그래야 한다. 나를 움직이는 힘은 호기심이며, 이 호기심은 각 개체 마다 일주일 분량만큼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실은 좀 비겁한 변명이다)

언제 책을 읽을까

일 벌이고 벌인 일 수습하고, 바쁜 척 하느라 바쁘다보니 일부러 시간을 내어 책을 읽지는 않는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책을 읽을 때는 앞서 말한대로 일주일 안에 책을 덮어야 하는데 아직 읽지 않은 쪽이 많을 때가 대부분이다.

책은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읽는다. 손에 들려있는 짐이 많지 않다면 차에 사람이 많든 적든 책을 꺼내 읽는다. 밑줄을 자주 긋는 책은 앉아서 갈 때 읽는 편이고, 흔들림이 많은 버스 속이거나 사람이 많은데 서서 가야 하는 경우엔 일주일을 넘게 읽어도 상관하지 않는 책들을 읽는다. 이렇게 해서 출퇴근 시간 80분 중 60분은 읽는다. 밖에 돌아다니는 걸 귀찮아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때는 거의 대부분 출퇴근이므로 일주일 중 5시간은 책을 읽는 셈이다.

집에서는 하고 있는 일에 집중을 못하거나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뒹굴거리며 읽는다. 하루 평균 30~60분 정도 된다. 자기 전에 읽기도 하는데, 해 뜰 때 책을 덮어서 다음 날 출근하는 데 지장을 받기도 한다.

똥을 눌 때도 책을 읽기도 했는데, 변비가 생겨서 그만 뒀다. 똥을 눌 때는 똥꼬와 아랫배 힘 조절에 집중하기도 바쁘다.

언제나 그런 건 아니다. 일정하지 않게 며칠은 책 읽는 날로 잡고 몰아서 책을 읽는다. 명절이나 우울기에 빠졌을 때 그러곤 한다.

정리하면 일부러 책을 읽으려 시간을 만들진 않는 대신 틈틈히 손에 책이 닿는대로 읽는다고 할 수 있다.

한 번에 여러 책에 집적대기

일부러 책 읽는 시간을 만들지 않다보니 책 읽는 때에 따라 머리 속 상태도 다르다. 대중 교통 탔을 때 집중도와 침대에서 뒹굴거릴 때 집중도, 찻집에 비싼 돈 주고 커피 마실 때 집중도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상황에 따라 책을 건드리다보니 한 번에 두 세권에서 너 댓권을 읽을 때가 많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08년 7월 18일엔 “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 “Ronald dahl의 The witches”, “프리젠테이션 젠”을 읽고 있다.

한 번에 여러 권을 읽는데 이 책 모두를 일주일 안에 다 읽을 수는 없다. 그래서 한 권 정도는 일주일 안에 다 읽을 책으로 정한다. 책 읽는 시간이 고정되고 규칙 있는 출퇴근 할 때 읽는 책을 일주일 안에 읽는다. 그래야 읽는 빠르기나 양을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책을 읽으면 일주일 안에 다 읽어야 하는 책을 두 세 권 읽을 때쯤이면 읽고 있던 다른 책들도 다 읽는다. 예전에 조정래 3부작(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출퇴근 할 때 읽어서 6개월 만에 다 읽었는데, 이 32권을 읽는 동안 마케팅, 경영 책을 10권 정도 읽었다. 권수가 많은 책을 읽다보면 지치기 쉽상인데 한 번에 여러 권을 읽는 습관 덕에 지치지 않고 읽은 기억이 난다.

어떤 종류 책을 읽을까

어지간히 필요성이 대두대지 않는 한, 종류를 가리거나 특정 종류만 읽지 않고 손 가는대로 읽는다. 다만 만화책과 (내 기준으로 봤을 때) 가벼운 소설(예를 들면 “하늘에 이르는 남자 건달”, “”, “다 빈치 코드” 같은 책들)은 피하는 편이다. 싫어하기 때문은 아니고 지나칠 정도로 쉽고 편하게 읽는 책들이라서 다음 책 읽을 때 방해된다. 한 번 편하게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다음 책도 그런 책들을 찾기 때문이다.

즉, 내용이나 주제에 따라 종류를 가리진 않지만 책을 읽는 자세나 흐름을 크게 바꾸는 책은 따로 모아놨다가 따로 날잡고 해치운다. 읽는 자세나 흐름이 강하게 요구되는 책들은 읽고 나면 다른 흐름으로 갈아타기 어려우므로 이런 책들만 따로 해치우고 나면 며칠은 책을 읽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고 덤벼든다.

권하고 싶은 책 읽는 방법

사람이 다 다를텐데 어찌 내가 책 읽는 방법을 다른 이에게 감히 권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내가 책 읽는 방법 중 하나 정도는 권하고 싶은 것이 있으니, 바로 밑줄긋기이다. 꼭 밑줄이 아니더라도 책에 책 읽은 척을 부담갖지 말고 열심히 남기라고 권하고 싶다. 밑줄 긋는 방법이야 자기 입맛에 맞게 만들거나 다듬으면 된다. 흔히 쓰이는 방법은 삼색볼펜으로 밑줄 의미를 가르는 것이다.

밑줄을 긋거나 책에 표시를 남기며 읽는 건 시간 대비 책 섭취율을 높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몰입 단계에 잘 이르며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밑줄에 기대지 않아도 충분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책에 흔적 남기며 읽기를 권한다. 숨쉬기에도 바빠서 죽을 지경이라며 책 읽을 시간을 낼 수 없다는 말은 굉장히 모순된다. 당장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그 바쁜 상황”이란 결국 일을 하며 자신을 계발하고 끊임없이 효율과 효과를 찾는 과정일텐데, 그 과정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과정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책 읽기에 들일 시간이 없다는 말은 논리로 따지고 들어가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혹, 책 읽을 시간이 단 10분도 없다면 9분이라도 책을 읽고, 그 9분 동안 효율성 있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데 도움을 주는 밑줄긋기(혹은 표시 남기기)를 하라고 권하고 싶다.

마이 스타트업 라이프. 창업하게 싶게 만드는 책

[ 2008-Jul-01, 13시 05분] [ Category : 책 읽은 척 하기 ] [ 엮인글수 : 5 ]

2000년에 창업하던 당시, 이런 책을 먼저 만났더라면 삽질과 뻘짓은 덜 했을텐데. 힘겹게 3년을 버티고 회사를 접을 당시, 이런 책을 만났더라면 좀 더 빨리 추스릴 수 있었을텐데. 몸을 추스리기 위해 아직도 많은 노력이 들이는 난 어찌보면 좀 때늦은 얼마 전에 이 책을 만났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한다.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었을 때 이 말은 참말이 된다. 나는 과연 얼마만큼 실패에서 교훈을 얻기 위해 노력을 했을까. 노력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지만 난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다. 뒷수습을 하는 데 노력을 한 걸 교훈을 캐내려는 노력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쓴 벤 카스노카는 어린 나이에 설마… 하는 생각이 들만큼 사업을 훌륭히 해왔다. 이미 수 많은 책에서 말하는 점들을 충실히 행했다. 많은 책을 읽으며,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리고 스스로가 가진 감각으로 사업을 하며 저지를 수 있는 삽질들을 최소화 했고, 해야 할 일도 잘 했다. 아… 그렇구나. 비로소 나는 그동안 “사업 실패”에서 교훈을 캐내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글쓴이가 잘한 부분과 잘 못한 부분들을 읽으며 내가 못한 부분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벤 카스노카는 조단 조단 자신의 얘기를 책에서 할 뿐이었지만, 부드럽고 재미난 그 문장들이 나를 아프게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아픈 반성을 했다.

짧게 보든 길게 보든 성공을 한 이들에게 성공 이야기를 듣다보면 마음 상할 때가 많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성공했는지 성공 요소에(what) 대한 얘기는 잘 해주지만, 그 무엇에 대한 이유(how, why)를 물으면 참 부실한 답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말로 “왜” 그런 요소를 이끌어 내거나 행할 수 있는지 답을 하지만 결론은 거의 언제나 하나이다. 자신이 잘났기 때문. 자신이 잘났다는 이야기를 수 백 쪽에 걸쳐 늘어놓은 뒤 돈을 받고 책으로 팔거나 목소리로 내어 돈을 번다. 아주 질 나쁜 경험담 공유이다.

벤 카스노카는 그런 점에서 볼 때 질 좋은 경험담을 공유하고 있다. 사업을 하며 겪은 이야기를 편하게 들려 줄 뿐이다. 자신을 꾸미지도, 그렇다고 사업(회사나 상품)을 꾸미지도 않는다. 그래서 읽으면서 마음 상하지 않는다. 성공을 깊이 원하거나 실패를 한 이들은 성공한 이들이 무의식 중에 내뱉는 침 섞인 말들에 상처를 받을 수 있다. 벤 카스노카는 자신의 “성공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사업 경험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며 그렇기 때문에 읽는이는 글쓴이가 행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폭력에 긴장할 필요 없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무릇 “경험 이야기”나 “성공 이야기”는 이런 역할을 해야 한다.

침대 맡에 두어 잠자기 전에 잠깐 읽으려 한 책이었는데 4시간을 꼬박 쉬지 않고 읽느라 밤잠을 못잤다. 어스름한 새벽녁을 느끼며 꿈 속에서 2000년 초를 반성했다. 반쯤 잠든 채 반쯤 깬 채. 그렇게 반성을 하고 난 뒤 나는 다시금 창업을 하고픈 도전심리가 떠올랐다. 허허, 그것 참. 참아야지. 반성을 했을 뿐 아직 교훈까지 제대로 일궈낸 것은 아니지 않은가. 참 위험한 책이다. 그래서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