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현상

[ 2004년 11월 02일, 10시 32분] [ 글 갈래 : 생각 잡기 ]

1. 글 잘 쓰는 사람이 글을 쓴다. 상징적이거나 은유적인 표현이 적절하게 들어가있다. 제법 훌륭한 논조이다. 여기서는 그의 “갑씨는 을씨에 비해 3만배 더 노력하여 그러한 결과를 이루었다”라는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을 집어보자. 중요한 것은 이 표현은 글 주제를 수식하는 양념일 뿐, 주제나 주장이 아니라는 것.

2. A가 이 글에 반박한다. 그는 “갑과 을의 데뷔 시기는 비슷하다. 을은 하루 평균 5시간씩 노력을 해왔는데 갑이 을보다 3만배 더 노력한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된다” 라고 반박을 했다. 글의 형태는 비교적 딱딱해보이고 논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애초 반박의 대상 자체가 반박하기에는 부적절하다. 반박을 하려면 글의 주제에 대해서 해야지 단지 표현법에 반박을 하는 것은 외모가 범죄형이라고 그 사람에 대해 알아보지 않고 그 사람을 구속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즉 이해력이(심지어는 독해력) 부족하거나 괜한 딴지를 거는 것이 분명해보인다.

3. 문제는 바로 이 부분. A와 비슷한 “수준”을 보이는 일부 애들이 A의 글을 훌륭한 이견으로 떠받들며 동감을 표한다. 애초 시작이 같잖은 A의 글은 토론을 소모적으로 이끌어내는데 성공하고 원 글은 어느 새 파묻혀 사라져있다.

4. 자, 이제 저 글 잘 쓰는 사람은 고민에 빠진다. 사람들이 자신의 어렵지 않은 글조차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소모적인 논쟁에 빠지는 모습을 보니 글을 길게 풀어써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자신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글을 길게 풀어쓰기 시작한다.

5. A가 비아냥거리며 글의 주제와는 아주 무관한 의사를 표시한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한날님은 잘 생겼다는 말이지요? 글이 너무 기네요” A의 글에 호응을 하던 애들도 동감한다. 또 다시 글의 주제가 파묻힌다.

이러한 현상이 이뤄지는 이유는 내용을 반박하는 것보다 글자에 대해 반박하는 것이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글자에 대해 보이는대로 반박을 하면 된다. 글의 의도와 목적(주제), 글쓴이의 논법을 파악하여 글의 내용에 대해 반박을 하여야 하는데 한국어가 아닌 한글만 배운 수준을 보이는 일부 아이들은 글자만을 훑어보고 글자에 대해 반박한다. 만일 자필 글이었다면 글씨체에 대해서도 반박할 거 같다.

남을 비판할 일만은 아니다. 나 역시 그런 생산적이지 못한, 아니 유해한 반박을 종종 한다고 생각된다. 다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매우 유해한 토론 참여법을 보이고 있는 사실을 모른다는 점은 나와 다르달까. 그러니 자신에게 소모적인 토론을 하지 말자는 말에 그리도 발끈하는 것이겠지. 자신의 의견이 소모적인 걸 모르니 인정을 못하는 거겠지. 이것은 독서와 토론을 가로 막는 우리 나라 교육 체계(비단 교육 기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정 교육도 교육 체계에 속한다)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한국에 유통되는 키보드에 신비한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

꼬리표 (tags) :

20개의 댓글과 엮인글이 있습니다.

  1. zork2k:

    글은 읽지않고 글자만 읽는사람들이 있지요.
    그나저나, "하고 싶은 말은 한날님은 잘 생겼다는 말이지요? 글이 너무 기네요" ^^


    comment at 2004/11/02
  2. 하늘이:

    음..그럼 ^^; 좀 더 도움이 되는 토론법을 위해서는 어떤 점들을 고쳐야 할까요?

    ps. 저 역시나 중간에 나왔던 한날님은 잘 생겼다는 말이 강하게 남는걸요~ㅎㅎㅎ


    comment at 2004/11/02
  3. 함장:

    훔. 역시 한날님은 미남인 것인가–)a


    comment at 2004/11/02
  4. litconan: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한날님은 잘 생겼다는 말이지요? 글이 너무 기네요.


    comment at 2004/11/02
  5. 초하류: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한날님은 잘 생겼다는 말이지요? 글이 너무 기네요. 게다가 한날님 유부남이라면서요 –+


    comment at 2004/11/02
  6. 노을:

    한날님이 미남이라는 글이었구나…ㅋㅋㅋ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전 아무래도 A 와 비슷한 사람일것 같네요.
    하늘이님 의견대로 토론법에 대한 쉬운 글 기대해도 되겠죠?


    comment at 2004/11/02
  7. 디제이쏜다:

    같은 글이라도 사람들마다 읽는 관점이 다르고, 같은 주제라고 사람들마다 쓰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죠. 사실 서핑 중에 보게 되는 격렬한 포스트와 트랙백, 덧글을 보다보면 토론이라기 보다는 서로의 주장만을 강요하는 모습을 많이 보거든요. 독서와 토론을 가로 막는 우리나라 교육체계의 문제와 함께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오픈 마인드의 문제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어쩌면 신비한 키보드도 어느정도 원인이 될 듯.. 멀더에게 의뢰를?)


    comment at 2004/11/02
  8. 유리아빠:

    제 생각엔 토론을 해본적이 없는 사람이 토론을 하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과도기인거겠지요. 시간이 해결해 줄거라고 믿습니다. ^^;


    comment at 2004/11/02
  9. 젯털:

    내용에 공감해서 처음으로 코멘트를 달까했는데 이 분위기는…

    한날님 초면에 죄송합니다만 미남이신가봐요…^^;


    comment at 2004/11/02
  10. 꺼칠이:

    정답. 한국에 유통되는 키보드에 신비한 문제라도 있는 것이다!!


    comment at 2004/11/02
  11. mylook:

    코멘트 너무 웃겨요 ㅠ.ㅠ

    결론: 한날님은 미남이고 그리고 유부남이고 키보드는 내추럴 키보드가 좋


    comment at 2004/11/02
  12. 띠용:

    세줄 요약을 청구합니다 땅땅땅~!ㅋㅋㅋ
    혹시 '나 한날은 잘생겼소~!'라는 한줄요약만 남겨버리면 흥~입니다~:P


    comment at 2004/11/02
  13. zelong:

    그러니까 국어 시간에 졸면 안 된다니깐요. (…) 그 문단주제 파악하기 할 때 집중 안하면 이렇게 된다구요.

    …그런데 이 글의 주제는 역시 '한날 님은 잘생겼다' 죠?


    comment at 2004/11/02
  14. 한날:

    하고 싶은 말은 제가 잘 생겼다는 말입니다. 살짝 장치를 두어 감추려 했는데 다들 주제를 밝혀내는 능력이 대단하시군요!

    하늘이님, 노을님/ 하하. 재미는 없을 거 같군요.

    디제이쏜다님/ 세진 키보드가 대세이던 90년대 중반에는 그래도 토론이 잘 이뤄지곤 했었는데 말이죠. 역시 키보드가 문제인가봅니다!

    유리아빠님/ 하긴, 학창시절에 토론 시간을 가지곤 했는데 언제나 토의만 했지 토론은 안했었군요. 애들 싸운다고 담임이 못하게 했던걸로 기억이 됩니다.

    젯털님/ 제 블로그에서는 한없이 즐기셔도 됩니다. 토론이나 진지함은 갖추건 갖추지 않건 아무 상관없습니다. :D 부담 갖지 마셔요.

    띠용님/
    남들이 글을 제대로 이해 못하고 횡설수설해도
    한날이 잘 생겼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3줄 요약)

    zelong님/ 그런 점에서 <u> 태그는 편리하지요.

    함장님, mylook님, 노을님/ s('O')z 으쓱.


    comment at 2004/11/02
  15. 초하류:

    어째서 제 덧글에는 답이 없단 말입니까..

    orz 상처 받았어요.. 삐뚤어 질테닷..


    comment at 2004/11/03
  16. yser:

    논점에 어긋나는 얘기인 거 같지만..
    마땅히 어디다 붙여야 할 글인지 모르는 고로..;

    …예전에 그런 글을 적은 적이 있습니다.
    가령, A 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A 라는 사람은 어떤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각종 정보를 긁어 모으고 열심히 노력하고 삽질하여 좌절 끝에-_- 참신한 기능을 구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B 가 보았습니다. B 는 A 가 구현한 기능에 덧붙여서 더 멋진 기능을 갖다 붙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C 가 나타 났습니다(대개 이 바닥? 에는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어디선가 혜성처럼 나타나죠). C 는 그간 행적을 둘러본 다음, A 와 B 의 코드를 최적화 해서 매우 효율적인 기능으로 변모 시켰습니다. …자, 이쯤되면 거의 그 코드는 손댈 일이 없게 됩니다. 남은 건 갖다가 쓰면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작스레 D 가 나타 났습니다. 이 D 는, A 의 코드를 보더니 얼마 안되는 시간에 B 가 구현했던 기능과 C 가 했던 최적화를 그냥 단 몇 줄 만으로 깔끔하게 구현해 버렸습니다. 기능을 덧붙이기도 쉽게 매우 심플한 구조를 가집니다..

    …자 그러면, A, B, C 가 했던 짓은 과연 삽질일까요?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분명…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의 노력은 개인의 만족에 보상되는 것이라 제외하더라도.. 거기까지 도달하기에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그것은 앞으로 다른 사람도 참고할만한 자료가 됩니다. 그리고 애시당초 D 가 처음부터 A 의 코드를 보지 않고 그냥 만들었다면.. 그리 좋은 것을 만들어낼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아예 '계기가 없었으므로' 아무 것도 안했을 수도 있겠죠..

    …토론도 이와 비슷해서, 누군가 A 라는 역할이 논제를 끄집어내면… 여러 사람이 달라붙게 됩니다. 결론을 다른 사람들이 제시하기도 하구요. 물론.. 도중에 논쟁, 소모성 비방..뭐 그런 것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완벽한 결론은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시일이 지나면 D 와 같은 사람이나, 아니면 자연스레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뭐 그런 얘기입니다.

    …..이거 너무 길게 적었군요. ㅜ.ㅜ
    아직 블로그 툴을 완성하지 못해서.. 이렇게.. -_-;;

    >초하류 님
    삐뚤어지면… 바로 잡아보아요.
    … ….;;;


    comment at 2004/11/03
  17. yser: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토론이 금새 소모적인 논쟁이 잘 되는 거 같던데… 그게 왠지 민족성 같기도 하고요. 나쁘다 어쩌다를 떠나서.. 김치를 먹는 국민성 같기도 해요;;

    쉽사리 뜨거워진달까…..
    그리고 원래 논점에서 벗어나서 딴 길로 새는 건 종종 있는 일인 듯;;


    comment at 2004/11/03
  18. 한날:

    초하류님/ 엇. 정말 그렇군요!

    yser님/ 동감합니다. 그렇게 생산적인 토론이 오간다면 좋겠지만, 어디까지나 문제는 사소한 혹은 주장의 주제와는 무관한 것에 대해 꼬리를 밟는 소모적인 것이 문제겠지요.
    냄비 근성이라고들 하죠. 대단히 부정적으로 사용을 하는데 이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감성이 발달해서가 아닐까 건방지게 생각을 해봅니다. 그만큼 감성에 호소하는 무언가에는 국민 대조작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집중력을 보이기도 하지요. 일장일단이겠습니다만, 만일 정말 우리 나라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이런 면이 강하다면 토론에는 부적합한 면이겠군요.


    comment at 2004/11/03
  19. 유리아빠:

    yser님 //
    한날님의 블로그에서만큼은 예외라고 봅니다. 이곳에서는 정말 많은 분들이 토론들을 하고 계시거든요. ^^; 그래서 이곳이 즐거워요.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고, 진지하면서도 지루하지 않아서…


    comment at 2004/11/06
  20. 명랑이:

    많이 겪었던 일이죠.. 옛날에.. 게시판에서 놀 때..^^;;
    여기 자주 와야겠네요..좋은 글이 많아서..


    comment at 2004/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