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날' 갈래에 속하는 글들

여보, 보일러댁에 한날님 놓아 드려야겠어요.

[ 2008-Dec-04, 03시 41분] [ Category : 나른한 오후에 써봄직한 가벼움 ] [ 엮인글수 : 3 ]

지난 여름에 입산수도를 가장한 백수 놀이에 빠져 시간 개념없이 시간을 보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텐가! 라고 누가 내 뒤통수 안쪽 구석에서 외치는 기분이 들 정도로 다소 늘어지다보니 의욕이 점점 줄더라. 그래서 일 몇 개를 벌였는데 그게 부메랑이 되어 그 알 수 없는 외침이 들려왔던 되통수를 향해 가열차게 날아오고 있고, 그 부메랑에 맞지 않으려고 열심히 뛰며 지내고 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든 거리낌없이 아저씨라는 말을 듣는 나이와 겉모습, 그리고 그에 비례하는 체력. 아저씨라는 부름이 지나치게 어울려서 마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며, 아저씨는 아저씨로다 읊는 것 같다. 내 예전 모습과 지금을 비교하면 눈에 띄게 아둥 바둥 살고 있다. 사회 관습과 생물학 관점에서 봤을 때 KS 표식 받아 한껏 늠름한 대한민국 아저씨가 된 후, 다시 말하자면 내가 아저씨가 되었다는 걸 깨달은 이후부터는 다른 아저씨들이 그러듯이 나도 바쁘고 아둥 바둥 거린다. 뭘 하는 지 모르겠는데 그래 보인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내가 요즘 바쁜 건 아저씨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욕심이 늘어서 그렇다. 가끔 보일러 놔드리러 갔다가 보일러 자리에 기어들어가 앉아 보일러 역할을 하는 삽질과 뻘짓을 해서 그렇기도 하고, 한 번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데 3초가 걸려서 하루 평균 28800번 숨을 쉬어야 하는데 그간 벌인 일 때문에 이제는 하루 평균 57600번 숨을 쉬어야 해서 그렇기도 하다. 무엇보다 체력이 많이 떨어지고, 생각이 많아져 머리도 조금 지친 탓이 크다.

입사 절차 중 하나인 건강검진을 지난 주에 받았는데, 몸 상태 좋을 때와 비교하니 몸무게는 약 5~7kg가 빠져있고 혈압은 118에 66이 나왔다. 이러니 피곤에 쩔쩔매지. 더구나 다음 주에 이사를 가야 하는데 마침 쌀도 떨어졌길래 밥통을 아예 상자 속에 넣어 봉했다. 어차피 점심, 저녁을 회사에서 먹으니까. 근데 지금 무지 배가 고프다. 이러니 피자 위에 얇게 눌러붙은 치즈처럼 얼마 되지도 않는 근육 마저 빠지지.

이달 말에 벌인 일 중 세 개가 끝난다. 또 다른 일에 눈이 가는 걸 참다 기어코 눈을 질끈 감고마는 상황이다. 한 달 정도 뒤면 내 등짝에 매달릴 2009년판 계획이 팔짱낀 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전환점을 넘겼으니 이제 달릴 차례이다. 가끔은 아버님댁을 훈훈하게 덥혀줄 보일러를 기리며, 그 보일러댁에 나라도 놓아 드려 나 나름대로 휴식도 취하고 싶다. 그럴 수 없는 것은 입산수도 3개월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잘못 때문이다. 그 좋은 기회를 그렇게 대충 보냈다니.

자칫 조금만 신경 못쓰면 이곳에 올라올 다음 글에 찍히는 날짜가 2009년 어느 날이 될 것 같아 할 말도 없으면서 자판 두드려 봤다. 이 글 쓸 시간에 잠을 잤으면 4시간은 잤을테지만, 가끔 슬그머니 나타나 하루에 57600번 가쁘게 숨 쉬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좋다. 더구나 여러 메타블로그에서 이 블로그를 빼지 않았던가. 이젠 정말 이 블로그엔 올 사람만 올 것이며, 할 말 있는 사람만 댓글을 달 것이다. 그 귀한 손길, 발길 아쉬워 살아있다는 표시로 숨소리는 물론 방귀라도 못뀔까?

당신을 증명해보세요.

[ 2008-Nov-22, 01시 18분] [ Category : Ego & Persona, 생각 잡기 ] [ 엮인글수 : 8 ]

가끔 심각하게 푹 빠져서 이런 고민을 합니다.

내가 나라는 걸 어떻게 내게 증명하지?

제가 제게 저라는 걸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을 하고 있다는 상황 자체가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근데 어쩔까요. 저라는 존재를 증명하지 못했는데 그 존재에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유(思惟)체는 사유체 자신을 사유할 수 없습니다. 즉, 생각을 하고 있는 당신 속 무언가는 그 자신 자체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없습니다. 뭐랄까요. 스스로 생겨나 존재하는 자에게 근본을 묻는 것 같다고 할까요?

조금 다르게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온 누리에 아무도 없고 오직 나만 있습니다. 나는 존재하는 걸까요? 존재하겠죠. 방금 전제에서 “나만 있다”는 말 자체가 존재를 뜻하니까요. 그럼 “내가 존재한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제가 전제를 그렇게 했으니 그것이 근거가 된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제가 그 전제를 부정한다고 해서 지금 엄연히 살아서 제 질문에 고민하고 있을 당신 존재까지 부정될 이유는 없습니다.

이 질문을 한 의도와 목적은 “나”가 아닌 다른 “존재”에게서 내 존재를 증명받지 말고, 스스로 자신을 증명하자는 겁니다.

“나”란 무엇입니까. “나”를 생각하는 “나”입니까? 그렇다면 “나”란 생각이라는 행위를 하는 “머리”인가요? 그게 맞다면, 두뇌가 죽지않게 영양을 공급하고는 머리를 제외한 온 몸을 자른 머리 덩어리도 “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번에도 조금 다르게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당신을 완벽하게 담은 책이 여기에 있습니다. 책은 글자를 담은 묶음인데, 글자는 사람들의 생각을 가리키는 기호일 뿐입니다. 기호는 그 대상을 재현하는 데 목적이 있죠. 재현은 원본이 아니라 원본을 흉내내는 것이며, 흉내란 그 원본이 아니므로 가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아무리 나를 완벽하게 담는다고 해도 책은 “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괴물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어처구니 없게도 글자로 “나”를 완벽하게 책에 담아내는 데 성공한 겁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책”이며, 나란 존재는 이 책을 대하며 느껴지는 감각(만져짐, 냄새, 보임 등)으로 증명할 수 있는 걸까요. 혹은, 이 책을 읽고 나를 재현해내는 다른 사람이 나를 증명하는 근거, 즉 증인이 되는 걸까요?

호소하듯 감성으로 “나”를 말하지 말고, 당신을 증명해보세요. 살아 숨쉰다고 내가 “나”가 아니며, 내가 “나”라고 아무리 외쳐도 증명되지 않습니다. 내가 “나”라고 믿는다면 왜 그런 것이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대체 무엇입니까. 당신을 증명해보세요. 내게, 즉, 자신에게 “나”를 증명한다면 다른 이에게도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요? 전 아직 증명하지 못해서 슬쩍 질문 던져보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