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입에 붙자 글이 눈에 붙었다

[ 2006년 06월 29일, 17시 29분] [ 글 갈래 : 나른한 오후에 써봄직한 가벼움 ]

‘바라다’는 말이 있다.
「 나는 애플코리아에서 내게 맥북을 공짜로 주기를 바라고 있다. 」
이렇게 사용하며, 생각하는대로 이뤄지길 원한다는 뜻이다.

‘바래다’는 말이 있다.
「 책이 오래되어 껍데기 색이 바랬다. 」
이렇게 사용하며, 본디 빛깔이 옅어지거나 윤기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아주 많은 사람들은 ‘바라다’를 ‘바래다’로 잘못 쓰는 경우가 참 많다. 이를테면,
「 이번 달 말까지 돈을 주시길 바요 」
처럼, ‘바라다’를 ‘바래다’로 잘못 쓰는 것이다. 이 말을 제대로 쓰자면,
「 이번 달 말까지 돈을 주시길 바요 」
라고 해야 한다.

이렇게 잘못 쓰는 경우도 있다.
「 이번 달 말까지 돈을 주길 바다 」
‘바라다 + ~었다’를 ‘바래다 + ~었다’로 잘못 쓴 것이다. 이 말을 제대로 쓰면,
「 이번 달 말까지 돈을 주길 바다 」
라고 해야 한다.

‘바라다’와 ‘바래다’를 정확하게 구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간 입에 붙은 ‘바래다’ 를 떼기 위해 신경을 써왔다. ‘바랬다’와 ‘바래요’는 혀에 깊이 박혀 있어서 ‘바랐다’와 ‘바라요’라고 말을 할 때마다 어색함을 느꼈다.

다른 사람에게 ‘바라다’와 ‘바래다’를 구분해서 써야하며, 흔히 잘못 쓰는 ‘바랬다’와 ‘바래요’를 지적한 적이 있었다. 그럴 때면 볼멘, 때로는 당당한 목소리로 내게 반박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내게 설득 근거로 내세우는 말은 어차피 서로 알아들으면 그만이라는 의견과 입과 귀에 익지 않아 어색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난 앞의견은 무시했지만, 뒷의견은 공감했다. 두 말을 구분해서 쓰자고 이야기 한 나도 어색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두 말을 구분해서 쓴 횟수도 점차 늘었다. 어느 날, 신경도 의식도 쓰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내 입에서 ‘바라요’라는 말이 나왔다. ‘바래요’라고 하지 않으려고 신경 썼었는데 어느 덧 원래 ‘바라요’라는 말을 써온 것 마냥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바라요’라는 말이 나와서 적잖이 놀랐다.

더 신기한 현상은 말이 입에 붙자 ‘바랐다’와 ‘바라요’ 글자가 눈에도 아주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이었다. ‘바라요’가 옳은 표현이니 어쩌니 하는 의식은 아예 들지 않고 원래 ‘바라요’라고 눈에 인이 박힌 것처럼 아무 감흥 없이 ‘바라요’가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간 틀린 표현에 익숙해져 맞는 표현을 어색해했다. 이는 애초 틀린 표현이 좀 더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입에 착착 달라붙을만큼 적절해서 익숙한 것이 아니라 단지 주변에 틀린 표현을 쓰는 사람이 많고 그것을 당연하게 주고 받아들여서 생긴 현상이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뜻이 서로 더 잘 통하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깐깐하게 구분해서 쓸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깐깐하게 구분해서 써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우리 말과 글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구분 지을 수 있는 말이 있는데 ‘바래요’를 ‘바래요’와 ‘바라요’ 뜻을 함께 가진 말로 사용하는 걸로 깨우치게 해선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다른 나라 사람일수도 있고 미래의 내 자식일수도 있다. 익숙하지 않고 입과 눈에 붙지 않아서 어색하게 쓰거나, 아예 틀린 표현을 써서 이들에게 오해나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신경쓰고 고쳐나가며 바른 말과 글을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야기를 나눌 때 상대방이 내 생각의 30%라도 이해하면 상당히 말을 잘하는 것이라 한다. 그만큼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상대방에게 전하기 어렵다.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는데 꼭 필요한 말과 글. 보다 정확한 말과 글을 써서 사소하다면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오해를 고쳐나가려 한다.

꼬리표 (tags) :

4개의 댓글과 엮인글이 있습니다.

  1. 베리히:

    좋은 현상이네요. :-) 저도 바래요는 몰라도, 바랐다 정도는 제대로 쓰려고 노력 중입니다. 점차 늘려나가야겠습니다. :-)


    comment at 2006/06/30
  2. 띠용:

    그런데 말이죠..
    ‘바라요’이건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좀 반말투(아님 시비조?)로 들린답니다.ㅋㅋㅋ


    comment at 2006/07/01
  3. 김용빈:

    안녕하세요 ^^

    그냥 이리저리 인터넷 서핑하다가 이 포스트를 발견했네요. 여기 글을 써도 되겠죠? 처음 글을 써봐서.. ㅎㅎ

    저는 언어라는 것이 물론 표준어가 정해져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말을 부러 바로 잡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또 얼마전부터 뉴스에 많이 나오는 “장맛비” 등은 상당히 어색함을 느끼지 않습니까?

    아까 사람들에게 물어봤을 때의 두가지 문제점 중 첫번째 문제점이 저는 사실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왜냐면 언어는 의사소통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의사소통이 잘 되는것이 언어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니까요. 그리고 언어는 고정적이지 않고 항상 바뀌어왔다는 점(이제 저희는 얼꼴이라 하지 않고 얼굴이라 하죠), 이미 바라를 바래로 쓰는것은 일반적 관습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미 바래가 표준어나 다름없어졌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comment at 2009/08/17
  4. Hannal:

    말과 글의 주요 쓰임새는 소통이므로 김용빈님 말씀에 일정 부분 공감합니다. 상당 수 표현들은 비표준이래도 관용 및 익숙함 등으로 통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표준말이 더 어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의사소통 도구이기 때문에 바르게 쓸 필요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익숙한 망치(도구)야 유연성 있게 쓰는 것이 의사소통을 돕겠지만, 그 망치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유연성은 자칫 접근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 글 맨마지막에서 바로 윗 단락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말을 배우는 다른 언어/문화권 사람이나 어린 아이들이라면 경우는 다릅니다. 우리가 다른나랏말을 익힐 때 뚜렷한 체계에서 벗어난 예외 표현을 접하면 어려움을 겪습니다. 심지어는 무조건 외우라고도 합니다. 그 말을 써왔던 사람들의 언어 역사나 문화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이뤄지기 전이므로 그 말을 익히거나 배울 때 혼란을 야기합니다.

    그리고 표준어나 다름없는 것과 표준어는 차이가 큽니다. 언급하신 “장맛비”는 우리말/글로 쓰여진 매체(출간물, 방송 등) 대부분에서 쓰이는 표준 맞춤법에 따른 표현이며, 이런 매체로 우리말을 공부하는 사람에겐 “장마비”는 틀린 맞춤법이지만 사람들이 흔히 쓰는 표현이므로 일단 둘 다 외우라고 한다면 부담이 될 것입니다. “장마 + 비”가 “장맛비”가 되는 것은 발음상 규칙을 통일하기 위함이지 예외 규칙을 두기 위함이 아니므로, 오히려 “장마비”가 발음상 예외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말과 글을 익힐 때 규칙만(패턴) 익히면 되는 상황이 그 규칙에서 벗어나는 예외도 많이 외워야 하는 상황보다 더 쉬운 건 공감하시리라 봅니다.

    “장맛비”에 대한 얘기를 좀 더 덧붙이자면, 이는 웃옷이 윗옷으로 맞춤법이 정리된 걸로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웃옷이라는 표기와 발음이 많았고 지금도 그렇게 쓰는 사람이 적진 않으나, 윗옷이라고 쓰고 읽는 사람도 무척 많습니다. 오히려 웃옷에서 웃이 위(top)가 아닌 다른 뜻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위에 입는/입은 옷이라는 뜻인 위 + 옷에서 위를 우로 바꾸는 건 우리나라 말 발음 및 표기 규칙상 예외 상황이지만, 위를 윗으로 바꾸는 건 이미 존재하는 규칙에 따른 것이므로, 결국 윗옷으로 정리된 셈이지요.

    “바래”도 아예 동음이의어처럼 하나로 합쳐져 표준어로 제정이 된다면 모를까, 아직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뜻 구분을 하는 두 말을 일부러 합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본 글에서도 썼듯이 처음엔 어색해도 쓰다보면 거부감이 들만큼 어색하지도 않던걸요. :)

    “데”라는 것도 사람들이 많이 잘못 쓰는 표현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와 “그런 데”를 뒤섞어 쓰거나 “그런 데”라고 써야 하는데 “그런데”라고 띄어쓰기를 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런 데”에서 “데”는 “곳”으로 바꿔쓸 수 있지요. 대다수 사람들이 이 “데”를 구분하거나 바르게 쓰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데”를 “그런데”라고도 쓸 수 있는 관용 표현으로 허용한다면 다른나라 사람이나 아이들은 커녕 이미 우리말/글에 익숙한 사람에게도 혼란을 야기할 것입니다.

    언어가 가진 특성 중 하나인 사회성, 즉 언어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하는 특성도 그 나름대로 규칙이 있습니다. 규칙을 무시하고 변화하는 현상은 그다지 많지 않으며, 예외 상황으로 쳐서 따로 다룹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수 년 전 책에서 바뀐 말을 보더라도 현재 쓰이는 말을 유추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저는 이정도 범위 안에서 유연성을 발휘하여 쓰는 것이 길게 봤을 때 의사소통을 더 돕는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의사소통을 돕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요.

    덧쓰기 : 저는 “얼굴”이 “얼꼴”에서 왔다는 걸 김용빈님 댓글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 고맙습니다


    comment at 2009/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