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모기
[ 2009년 10월 05일, 23시 02분] [ 글 갈래 : 나른한 오후에 써봄직한 가벼움 ]어제 밤부터 줄곧 날 괴롭혀 온 모기를 잡았다. 검붉은 피가 나오는 걸 보니 날 잡아잡순 지 얼마 안 됐나보다. 갓 빨아들인 피를 소화 시키기도 전에 죽어가는 모기를 보니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벌레를 싫어한다. 갓 20대에 접어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그리마 외엔 망설이지 않고 벌레를 죽일 수 있었다. 이제는 대하는 것은 물론이요, 죽이는 것도 싫다. 벌레를 보며 느끼는 혐오감이 마음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나를 가둔다.
모기를 죽일 때에도 마음이 편하진 않다. 요리조리 내 박수를 피하며 약올리다 힘겹게 잡고 나면 느끼는 짜릿함이 진할수록 마음이 개운치 않다. 가끔은 책을 볼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이쯤되면 꼴값을 떨이친다고 할 것 같다. 괜찮다. 내 꼴값은 많이 비싸니까.
몇 가지만 지켜준다면 난 참말로 모기를 죽이지 않을 수 있다. 무리한 조건도 아니다. 살갗이 연해서 더 간지러움 타는 곳 물지 말 것. 앵~ 소리 들리는 귀 근처에서 알짱대지 말고 바로 허벅지나 엉덩이 부위로 가서 용건만 간단히 마칠 것. 물론, 뇌염이나 말라리아 같은 전염병을 남기고 떠나면 안 된다.
어쩐지 다소곳한 느낌이 드는 작은 봉우리를 남기어 단골집 표식을 남겨도 괜찮다. 과식해도 되고, 조금씩 여러 번 마셔도 된다. 단지, 귀 근처엔 얼씬도 하지 말고, 오른쪽 엉덩이가 물린 걸 왼쪽 엉덩이가 모르게 콕 찌르고 갔으면 좋겠다. 그래, 조금 더 양보해서 가끔은 살갗이 연한 곳을 공략해도 괜찮다. 가끔은 별식을 하고 싶을테고, 하루 정도 불편한 건 참을 수 있다.
사람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살아왔으면서 이토록 수수한 협상이 맺어지지 않은 점은 실로 유감이다. 또한, 협상 불성립으로 오늘도 짝짝 박수치며 짧게나마 미안한 마음을 갖는 이 상황도 유감이다. 올해엔 지겹게 유감스러웠으니 이제 그만 활동을 멈춰주었으면 좋겠다. 이젠 가을이잖어어어. 쌀쌀하잖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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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요즘 모기때문에 잠을 설쳐서…ㅋㅋ
올 여름에는 괜찮더니만 가을이 오니깐 갑자기 모기가 극성이네요.
한 두마리씩 잡으면서도 죄책감이 들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가 벌레를 잡을 때 “관세음보살…”하던 게 생각이 나요. (저는 손 대기 싫어서 전기모기채를 씁니다. 팡! 하고 잡히는..)
계절이 조금 더 가고나면 괜찮아지겠죠 뭐ㅋㅋ
comment at 2009/10/06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하루 피로가 싹 풀리듯 기분이 좋습니다.
처음 뵙는 것 같은데, 반갑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이제 제법 쌀쌀한데 이놈들은 대체 언제쯤 모기답게 굴까요? 들어올 구멍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충분히 잡았다고 생각했는데도 자려고 불끄고 누우면 잠들기 직전쯤 슬슬 귀에서 앵앵대는 걸 보면 신기할 지경이에요. 싸우자는 것인데, 그러긴 싫고 제발 협상에 임해주었으면 좋겠어요. ㅜㅜ
그나저나, 그 전기모기채 쓰는 사람들이 많던데 효과가 좋은가봐요? 전기모기채를 휘두르는 모습을 10m쯤 떨어져서 보면 은근히 재미있어서 호기심이 일긴 하는데 효과는 의심하고 있었거든요.
남의 몸에서 나오는 제 피를 보는 것보다는 저 모기채가 더 나아보이긴 한데. 흐음.
뭐, 말씀대로 좀 더 계절이 깊어가면 괜찮아지겠죠. ^^ 곧 있을 제 생일 전에는 나아지길 바랄 뿐이랍니다. 쿠쿠.
comment at 2009/10/07
진짜 귀 근처에서 앵앵대지만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것 때문에 불면증이.. orz
comment at 2009/10/07
가을모기는 물리면 독하더라구요ㅜㅜ
comment at 2009/10/10
# 미고라자드님/ 지가 뭔데 꼭 그리 방문을 알려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ㅜㅜ 하루 이틀도 아니고.
# 띠용님/ 흰색과 검은색 가로줄무늬를 한 그 모기… 참 독하지요. 끄응.
comment at 2009/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