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성과 부정성을 생각하다.
[ 2010년 01월 27일, 23시 19분] [ 글 갈래 : Ego & Persona ]여러 사람을 만나며 배운 것 중 하나는 긍정성과 부정성이다.
상대방이 긍정주의자이면 나도 긍정성 원기와 열정을 충전받게 된다. 긍정주의자와 몇 시간을 이야기 나누어도 지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걸 듣는 게 즐겁다. 내가 입을 여는 것이 두렵지 않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은 물론, 자리를 파한 뒤에도 설렘이 남아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에 반해 부정주의자이면 충만했던 내 열정과 원기 마저도 깎여 나가는 기분이다. 고작 10분만 이야기를 나눠도 피로해져서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의 말을 듣는 것도 고역이고 내가 말하는 것도 부담된다. 내 말 조차 부정 당할테니까. 자리를 파하고 나면 그 후유증 때문에 다음 일정을 소화할 수 없다. 구정물에 흠뻑 빠진 채로 다른 사람을 만날 순 없지 않은가?
긍정주의는 낙관주의와 구분해야 한다. 낙관성은 비록 자신의 입에서 부정형 말이 나오지 않을 뿐, 듣는 상대에게 불안감을 일으키므로 오히려 상대방 머릿 속에 부정성을 심어준다. 결국 낙관주의자와 나누는 대화 과정은 부정주의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큼 지치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어딘지 모를 불안감에 계속 긴장하게 되므로 나중에 자리를 파한 뒤에 지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낙관주의자도 표현 방식만 다를 뿐 결과는 부정주의자와 비슷하다.
왜 그럴까? 낙관성이나 부정성은 “다름”보다는 “틀림”에 더 집중하기 때문이다. 낙관주의는 낙관을 지키기 위해 자신과 다른 것을 틀리다고 여기고, 부정주의는 부정하기 위해 다른 것을 틀리다고 한다. 자신은 옳고 타인은 틀리기 때문에 틀린 자가 옳은 자신에게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도 깔려있다.
하지만, 사람은 모두 다르다. 서로 다른 사람이 같아질 수는 없기 때문에 서로를 맞춰 나아간다. 그런 동기화 과정과 행위는 적지 않은 힘을 소비한다. 낙관주의자와 부정주의자와 대화를 하면 힘이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긍정주의자는 “다름”에 더 집중한다. 가령, 발생한 문제를 “틀려서 발생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달라서 발생한 것”으로 여기고, 그 “다름”에 비추어 문제를 푼다. 문제를 푸는 데에 집중하면 되므로 힘도 덜 들고 효율도 높다.
여러 사람을 만나며 얻은 이 교훈은 사실상 무척 사소하다. 진짜 교훈은 저런 생각에 비추어 나 자신을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난 그러지 말아야지, 저 사람은 왜 저리 부정 성향이 강할까? 에 그치지 않고, 내 말과 생각을 다시 보게 된다. 편하게 내뱉은 내 말이 혹시 상대방의 힘을 희석시키거나 와해시키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여러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그들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서 나라는 사람도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늘도 자신에게 되묻는다. 나는 긍정주의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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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합니다. 좋은 글 감사.
comment at 2010/01/28
[...] This post was mentioned on Twitter by Hannal and Hannal, kwang woon lee. kwang woon lee said: 둘 다 전염성이 강하죠 RT @hannal: 긍정성과 부정성을 생각하다. http://bit.ly/d4nAGU 상대방이 긍정주의자이면 나도 긍정성 원기와 열정을 충전받게 된다. 긍정주의자와 몇 시간을 이야기 나누어도 지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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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멋진 글!!! 잘읽었습니다.
늘 내게 바른말을 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옆에 있어야 합니다. 긍정 / 부정으로 분류하자면 긍정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이런 사람만 옆에 있으면 삶이 피로해집니다.
특히 새로운 일을 시도해야할 때는 ‘다름’, ‘틀림’을 판가름할 기준이 없기때문에 긍정주의자로서는 ‘새로움의 리스크’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밖에 없죠. 이 경우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대화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피곤해지긴 부정적 사람과 마찬가지 입니다.
이럴때 필요한 것은 내편 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내가 옳다고 해줄 수 있는 사람이죠.
굉장히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이런 사람이 주변에 하나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저기서 냉정한 평가에 치인 사람들에게 활력충전소 같은 사람이죠.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여기서 말하는 긍정주의자 라면 정서적으로 황폐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세기 동안 인간심리를 연구한 사람들이 주장하는 공통된 점은 사람의 마음은 매우 불안정 하다는 겁니다. 사람은 매우 논리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논리적이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는거죠.
나는 긍정주의자인가? 라는 물음이 나와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힘이되는가? 라는 질문과 동일하다면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길 원합니다. 그러나 ‘틀림’ 보다 ‘다름’ 에 집중하는 결과지향적인 논리적 사고의 소유자인가? 라는 질문과 동일하다면, 그건 좀 생각해볼 문제가 될 것 같아요.
comment at 2010/02/01
맞습니다. 그런데 저와 쓰시는 낱말 정의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말씀하신 상황은 제가 낙관주의로 여기는 경우입니다. 긍정주의자는 “해결해 나갈 길을 찾기 위해 긍정하는 사람”이여야 하지 “대안없이 yes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낱말 정의와 사용 차이를 제하고, 말씀하시는 맥락엔 대부분 동의합니다)
예로 드신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상황에서도, 긍정주의자는 그 새로운 일을 가능케 하는 길을 보고 확신하고 긍정하며 지지하는 것이지, 옳고 그르고, 혹은 더 나은 것과 못한 것을 판단하는 과정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낙관주의자라면 밑도 끝도 없이 “잘 될 거야”라 여기겠지만, 긍정주의자라면 가능성을 먼저 찾은 뒤에 그 가능성에 대해 긍정하고 지지하고 확신하는 것이지요.
comment at 2010/02/01
맞습니다.
글에서 긍정주의자는 ‘가능성을 보고 긍정한다’ 는 느낌보다 ‘논리적으로 해결해 나갈 길을 모색한다’ 는 느낌으로 다가와서 낱말정의를 그렇게 했구요.
낙관주의자는 ‘내가 하는 일을 덮어놓고 찬성한다’로 했습니다.
어쩌면 글 내용보다 한날님의 이미지에 집중해서 글을 읽어서 bias가 생긴걸지도 모르겠네요. ㅎㅎㅎ
말씀하신대로 새로운 일을 할때 특히 긍정주의자는 올바른 피드백을 주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줍니다. 다만 이 올바른 피드백은 목표에 닿을 수 있도록 서로 토론하는 과정에서 얻는 산출물이므로 얻어가는 과정이 굉장히 피곤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열정에 가득한 사람도 어떤 순간에 사람은 정서적으로 굉장히 약해집니다. (번아웃하는 경우 등)
내 밑도 끝도 없이 잘될거야 라고 여기는 사람이 주변에 단 하나도 없다면, 모든 것에 대해 분석적인 피드백만 내놓는다면,
그 피드백이 아무리 목표에 도달하게 해주는 건설적인 것이라도 제대로 받아들이기 힘든떄가 올 수 있다는 거죠.
결국 긍정주의자는 당연히 좋다.
하지만 사람은 불완전하므로 낙관주의자 전체를 좋지않게 보는 것은 너무하다.
따라서 내가 전체 목표에 도달하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낙관주의자가 꼭 긍정주의자로 바뀔 필요가 없다.
고 적어보려다 이렇게 길게 적었네요.
(그리고 보통 낙관주의자 역할은 가족이나 애인이 해주더라는…)
comment at 2010/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