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증명해보세요.

[ 2008년 11월 22일, 01시 18분] [ 글 갈래 : Ego & Persona, 생각 잡기 ]

가끔 심각하게 푹 빠져서 이런 고민을 합니다.

내가 나라는 걸 어떻게 내게 증명하지?

제가 제게 저라는 걸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을 하고 있다는 상황 자체가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근데 어쩔까요. 저라는 존재를 증명하지 못했는데 그 존재에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유(思惟)체는 사유체 자신을 사유할 수 없습니다. 즉, 생각을 하고 있는 당신 속 무언가는 그 자신 자체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없습니다. 뭐랄까요. 스스로 생겨나 존재하는 자에게 근본을 묻는 것 같다고 할까요?

조금 다르게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온 누리에 아무도 없고 오직 나만 있습니다. 나는 존재하는 걸까요? 존재하겠죠. 방금 전제에서 “나만 있다”는 말 자체가 존재를 뜻하니까요. 그럼 “내가 존재한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제가 전제를 그렇게 했으니 그것이 근거가 된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제가 그 전제를 부정한다고 해서 지금 엄연히 살아서 제 질문에 고민하고 있을 당신 존재까지 부정될 이유는 없습니다.

이 질문을 한 의도와 목적은 “나”가 아닌 다른 “존재”에게서 내 존재를 증명받지 말고, 스스로 자신을 증명하자는 겁니다.

“나”란 무엇입니까. “나”를 생각하는 “나”입니까? 그렇다면 “나”란 생각이라는 행위를 하는 “머리”인가요? 그게 맞다면, 두뇌가 죽지않게 영양을 공급하고는 머리를 제외한 온 몸을 자른 머리 덩어리도 “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번에도 조금 다르게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당신을 완벽하게 담은 책이 여기에 있습니다. 책은 글자를 담은 묶음인데, 글자는 사람들의 생각을 가리키는 기호일 뿐입니다. 기호는 그 대상을 재현하는 데 목적이 있죠. 재현은 원본이 아니라 원본을 흉내내는 것이며, 흉내란 그 원본이 아니므로 가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아무리 나를 완벽하게 담는다고 해도 책은 “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괴물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어처구니 없게도 글자로 “나”를 완벽하게 책에 담아내는 데 성공한 겁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책”이며, 나란 존재는 이 책을 대하며 느껴지는 감각(만져짐, 냄새, 보임 등)으로 증명할 수 있는 걸까요. 혹은, 이 책을 읽고 나를 재현해내는 다른 사람이 나를 증명하는 근거, 즉 증인이 되는 걸까요?

호소하듯 감성으로 “나”를 말하지 말고, 당신을 증명해보세요. 살아 숨쉰다고 내가 “나”가 아니며, 내가 “나”라고 아무리 외쳐도 증명되지 않습니다. 내가 “나”라고 믿는다면 왜 그런 것이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대체 무엇입니까. 당신을 증명해보세요. 내게, 즉, 자신에게 “나”를 증명한다면 다른 이에게도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요? 전 아직 증명하지 못해서 슬쩍 질문 던져보는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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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의 댓글과 엮인글이 있습니다.

  1. 江湖人:

    존재…어렵죠.
    혼자 증명(아니 깨달음???)할 수도 있을 겁니다만, 수학적인 공식이 아니라서…금방 회의가 들 수 밖에 없겠고, 그러다 보니 상대방과의 관계에 입각하여 존재를 증명하려 들겠지요.
    그렇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아닌 것이 되겠구요. ^^

    全 우주에 나와 나무 한그루만 있다면 그것이 나무임을 나는 어떻게 증명할까…그리고 나무가 보는 나는 존재하는 것인가…에 관해 한동안 생각했던 적이 있어서 반가움에 댓글을 답니다.

    그리고 당연히 저도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


    comment at 2008/11/22
  2. 한날:

    나와 나무가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내가 아닌 존재가 나무라는 점이 참으로 매력있군요. +_+ 江湖人님 덕분에 색다른 즐거움과 반가움에 빠져봅니다. :D


    comment at 2008/11/23
  3. Max:

    고대 서양철학의 인식론의 주제를 보는듯한 글이군요.
    나자신을 증명하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알아야 겠죠.
    그럼 자신을 알던, 다른것을 알던, 안다는것 무엇일까요?

    인식론(합리론적,경험적인신론등)을 다 읆지는 못하겠지만,
    관련책을 찾아 보면, 위의 생각에 도움은 될듯합니다.
    물론 철학적인 물음은 답보다는 철학함을 중요시 하니까 꼭 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으셔도….^^;;;


    comment at 2008/11/24
  4. 한날:

    답을 찾고자 하는 것은 사실 동기일 뿐, 끊임없이 의심을 하고 물음을 생각하는 연료는 호기심이라 생각합니다. :) 답 없다~ 라며 포기하기 보다는 말씀하신대로 “철학함”에 의미를 두는거죠. 핫핫.


    comment at 2008/11/24
  5. 미공자:

    네가 나의 친구이기에 너는 내게 의미이자, 벗으로써 존재하고 나 역시 너의 친구이기에 너를 찾고 이야기하고 함께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잖아. 우린 이미 존재의 이유가 있고, 그래서 즐거운 것 같아. 자주는 못보지만 보면 항상 반가운, 너는 멋진 내친구다. ㅎㅎ


    comment at 2008/11/25
  6. 한날:

    하하하, 반칙! 사람 사이 관계와 감성으로 설득하려 하다니! :)


    comment at 2008/11/28
  7. 띠용:

    전 제 자신을 증명 못하니까 나라고 생각해요. 증명할 수 있다는건 객관적인 사람이 하는거니까요;


    comment at 2008/12/04
  8. 한날:

    그것도 재밌는 의견이군요! :D


    comment at 2008/12/05
  9. JNine:

    철학계의 영원한 화두이지요. 일부 종교의 화두이기도 하구요.
    조금 다른 이야기로…
    현재의 컴퓨터의 근간을 만든 사람으로 튜링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현재의 컴퓨터는 튜링 머신에서 조금의 진보도 하지 못하고 있죠.(DNA 컴퓨터같은 패러다임이 완전히 다른 것은 아직 실용화 되지 않았으니 논외로 하구요)
    튜링이라는 사람은 비트겐슈타인과 ‘인공 지능’에 대해서 토론을 벌이다 결과적(?)으로 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에게 쿠사리를 먹습니다. 튜링은 안이 안보이는 곳에 컴퓨터를 가져다 놓고 사람이 말을 걸면 컴퓨터가 적절한 말을 선택해서 응대하도록 하여 만약 사람이 자신이 대화하고 있는 것이 사람인지 모를 정도로 잘 대답할 수 있게 컴퓨터를 만든다면 그것이 ‘인간과 같은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거든요(자세한 얘기는 조금 다르지만).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은 그 생각을 ‘깔아 뭉겠죠’ ㅎㅎ
    존재를 생각할 때 ‘언어’라는 도구가 없으면 어떤식으로 ‘존재’를 받아들이게 될지 생각해 보는 것도 시간 때우기 용으로 그만인 화두;;

    후다닥


    comment at 2008/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