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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을 눌 때는 고독을 바란다.

[ 2009-Jan-07, 11시 47분] [ Category : 나른한 오후에 써봄직한 가벼움 ] [ 엮인글수 : Comments Off ]

변기에 앉아 똥을 밀어내려고 힘을 준다. 끄응. 잘 나오지 않는다. 내 엉덩이로 봉쇄된 변기 안 공간을 기운 빠진 헛방귀만이 푸슉-하고 가른다.

공간. 나는 똥을 눌 때 엉덩이로 이 공간을 마주대할 뿐 눈으로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내 몸 뒷중심으로 틀어막아서 내가 볼 수 없다.

문득 든 생각. 내가 똥을 누는 동안에 이 안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커다란 눈알 하나가 얼굴 반을 차지하는 작은 존재가 있는 것이다. 그는 변기 배출구쪽 공간에 은밀하게 살다가 내가 똥을 누려는 감지가 오면 재빨리 나온다. 그러고는 감나무 밑에서 떨어질 감을 받아먹으려고 입을 벌리듯 하염없이 똥을 누는 내 똥꼬만 바라보는 것이다. 오늘처럼 똥이 잘 나오지 않는 날엔 입을 하염없이 벌린 채 빤히 내 똥꼬를 응시할 것이다.

가끔 똥이 위대한 탈출을 하며 내는 소리의 웅장함이나 음율감에 비해 양이 다소 적을 때가 있다. 똥 밀어내기를 실패해서 엉거주춤 일어나 바지춤을 끌어당기며 변기를 들여다보면 물에 잔잔한, 하지만 뚜렷한 파장이 파르르 퍼지는데 마치 헛탕쳐서 발끈하는 것 같다. 이 정도면 그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하나 둘 밝혀지는 셈이다. 내게 들키지 않으려 애썼겠지만 예리한 내 감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훗.

똥을 눌 때는 고독을 바란다.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혼자라는 쓸쓸한 마음이 이는 모순이 들곤 한다. 하지만, 그가 존재한다면 나는 더 이상 똥을 눌 때 혼자가 아니다. 거름이 되지 못할 바엔 남에게 공유하고 싶지 않은 내 똥을 기꺼이 인계받는 이가 있다. 그를 생각하니 똥을 눌 때도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의욕이 샘솟는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똥과 일이 닮은 점

[ 2008-Jan-11, 21시 29분] [ Category : 생각 잡기 ] [ 엮인글수 : 2 ]

좌변기에 앉아 똥을 밀어냈다. 적잖은 똥이 오와 열을 맞춰 흐트러짐 없이 가지런히 밀려 나갔다. 끊김없이 나가는 느낌을 되집어 보건데 2000원 어치만큼 순대만 길게 뽑아낸 듯 하다. 매끄럽게 나간 걸 보면 기름진 똥인가보다. 그래도 이 정도 양이면 만만치 않겠구나 싶어서 휴지를 넉넉하게 뜯었다.

슥- 닦고 휴지가 거둔 성과를 눈으로 확인했다. 어라? 성과가 거의 없었다. 뭔가 싶어 휴지를 반으로 접고 다시 슥- 닦았는데 이번에는 더 성과가 없었다. 양은 많았지만 깔끔한 일처리를 한 탓에 뒷정리 할 것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일도 이와 같다. 처리한 일이 산더미 같이 많다고 하더라도 일처리만 제대로 했다면 뒷정리 할 것은 거의 없다. 그러나 아무리 적은 일을 했더라도 일처리가 깔끔하지 못하면 구질 구질할 만큼 뒷정리 할 게 많다. 가끔 힘 조절을 잘못해서 똥꼬를 닦는 휴지를 손가락으로 뚫으면 똥꼬에 땀이 절로 맺히는 참사가 벌어진다. 마찬가지로 일 뒷정리를 잘못하면 마무리한 일보다 뒷정리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뒷정리. 말 그대로 앞서 한 일을 후에 정리하는 것이다. 평소 얼마만큼 열심히 일을 잘 처리했는지는 뒷정리에 들이는 노력 정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최근 뒷정리를 하느라 고생한 나를 반성해보며 똥도 일도 평소에 잘 처리하여 뒷정리 하느라 고생하지 않기로, 다 된 줄 알았던 뒷정리를 다시 달려들어 뒷정리를 하지 않기로(마치 똥 덜 닦아서 다시 화장실에 들어가 닦아내듯이) 굳게 마음을 다잡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