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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날은 생각한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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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여러 이야기거리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보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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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왜 전문가는 불친절한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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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5 Sep 2011 16:20:15 +0000</pubDate>
		<dc:creator>Hannal</dc:creator>
				<category><![CDATA[생각 던지기]]></category>
		<category><![CDATA[소통]]></category>
		<category><![CDATA[친절]]></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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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의사 등 대다수 전문가는 불친절하다. 그 전문가의 전문분야에 대응할 대체재가 없으면 더 불친절해지는 경향이 있다. 불친절한 이유 중 하나는 태도이다. 즉,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고 불친절한 마음씨가 태도로 드러나는 것 뿐이다. 이런 전문가에겐 답이 없다. 그가 가진 전문성만 놓고 대하거나 상대하지 않거나. 그런데, 태도는 분명 불친절하지 않은데 얘기를 나누면서 친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의사 등 대다수 전문가는 불친절하다. 그 전문가의 전문분야에 대응할 대체재가 없으면 더 불친절해지는 경향이 있다.</p>
<p>불친절한 이유 중 하나는 태도이다. 즉,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고 불친절한 마음씨가 태도로 드러나는 것 뿐이다. 이런 전문가에겐 답이 없다. 그가 가진 전문성만 놓고 대하거나 상대하지 않거나.</p>
<p>그런데, 태도는 분명 불친절하지 않은데 얘기를 나누면서 친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 나름대로 친절하려는 모습이 보이고 그 모습을 보며 친절하다고 느끼는데도 그렇다. 비유하자면, 우리말을 쓰지 않는 다른나라에 가서 길을 우리말로 물어보는데 상대방은 자기 나랏말로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이다. 백날 친절해봐라. 손잡고 데려가주지 않는 이상 길을 찾을 수 있나.</p>
<p>상징성과 익숙함을 이유로 전문가, 그 중에서도 의사를 예로 들었지만, 전문가가 아니어도 우리는 친절한 태도 효과가 전혀 나지 않는 불친절함을 겪는다. 가령, 아무리 부드럽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친절하게</p>
<p style="text-align: center;">어머니 : 아들, 인터넷이 안 돼</p>
<p style="text-align: left;">라고 말을 해도, 전화로 이 물음을 받는 아들 입장에선 전혀 친절한 소통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따뜻하고 사랑이 샘솟으며 나긋나긋하고 친절하게</p>
<p style="text-align: center;">아들 : 커맨드창 열어서 ipconfig 라고 쳐서 ip 할당 받았는지 확인해보세요</p>
<p style="text-align: left;">라고 말을 해도 젖먹여 키워놨는데 어머니께 고거 하나 친절하게 안 가르쳐주는 불효자일 뿐이다.</p>
<p style="text-align: left;">요는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고 <a href="http://www.hannal.net/think/communication_for_trust/">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지</a> 여부이다.</p>
<p>당신은 전문가인가? 상관없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당신은 친절한가?</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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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Buddy Rush의 인벤토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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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03 Mar 2011 12:18:39 +0000</pubDate>
		<dc:creator>Hannal</dc:creator>
				<category><![CDATA[생각한다]]></category>
		<category><![CDATA[게임]]></category>
		<category><![CDATA[기획]]></category>
		<category><![CDATA[레벨디자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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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Buddy Rush에서 두 번째 지루한(떠나기 십상인) 시기인 레벨 20에 도달했다. 이쯤되면 슬슬 왈가왈부 할만한 것 같으니, 이 게임의 인벤토리에 대해 한 마디 해보련다. 왜냐하면 이 게임은 시스템 전체가 참 균형 잘 잡힌 편인데, 인벤토리 밸런싱은 그 균형감에서 살짝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벤토리 공간이 너무 부족하다. 버디 러시에서 보유할 수 있는 아이템이 18개이며, 장착하고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Buddy Rush에서 두 번째 지루한(떠나기 십상인) 시기인 레벨 20에 도달했다. 이쯤되면 슬슬 왈가왈부 할만한 것 같으니, 이 게임의 인벤토리에 대해 한 마디 해보련다. 왜냐하면 이 게임은 시스템 전체가 참 균형 잘 잡힌 편인데, 인벤토리 밸런싱은 그 균형감에서 살짝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p>
<p>결론부터 말하자면, <strong>인벤토리 공간이 너무 부족</strong>하다.</p>
<p><img class="alignnone" src="http://a5.sphotos.ak.fbcdn.net/hphotos-ak-snc6/185733_10150150709038623_718298622_8250859_1373346_n.jpg" alt="" width="671" height="547" /></p>
<p>버디 러시에서 보유할 수 있는 아이템이 18개이며, 장착하고 있는 아이템 9개를 포함하면 총 27개를 보유할 수 있다. 숫자로 보면 작은 숫자는 아닌데 몇 가지 제약에 조합되어 체감하는 숫자는 훨씬 작아지게 된다.</p>
<h3>1. 겹쳐지지 않는 아이템</h3>
<p>버디 러시에서 모든 아이템은 무조건 인벤토리 슬롯 하나를 차지한다. 종류별로 겹쳐지지 않는다. 가령, 빨간 물약 작은 것이 5개라면 빨간물약 작은 것이 인벤토리를 한 칸 차지하고, 그 물약이 5개 있다고 표시되질 않고, 각각 따로따로 인벤토리 슬롯을 차지한다.</p>
<h3>2. 계정 단위 인벤토리</h3>
<p>캐릭터 마다 인벤토리를 갖지 않고, 계정 당 인벤토리 하나를 제공한다. 만약, 캐릭터가 두 명이면 체감 인벤토리는 50%이 된다. 이것은 세 번째 제약과 연계되어 더 강한 압박으로 작용한다.</p>
<h3>3. 직업별 아이템이 많음</h3>
<p>물약처럼 캐릭터 직업(클래스) 무관하게 쓸 수 있는 아이템이 있는가 하면 직업에 귀속되는 아이템이 있다. 문제는 직업에 귀속되는 아이템 수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종류 자체가 많다기 보다는 레벨 제약 때문에 많게 느껴진다. 같은 종류 칼이라고 하더라도 레벨에 따라 따로 보관하기 때문이다.</p>
<p>이것은 인벤토리를 계정으로 보유하는 2번 제약과 맞물려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전사 캐릭터와 마법사 캐릭터를 키운다고 가정하다. 전사는 레벨 20이고 마법사는 레벨 14인데(내 현재 캐릭터 레벨^^), 마법사용 레벨 16짜리 모자를 얻을 경우 이 아이템은 인벤토리에 계속 쟁여 놓게 된다. 전사와 마법사 모두 지금 당장 장착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마법사가 레벨 16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인벤토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p>
<p>그런데 게임을 하다보니 레벨 15짜리 모자를 또 주웠다고 가정하자. 이런 경우, 보통은 둘 중 하나는 포기할텐데 버디러시에서는 둘다 쟁여놓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버디러시는 신체 부위 별로 아이템을 제한한다기 보다는 장착할 수 있는 슬롯 개수로 캐릭터 능력치를 밸런싱하기 때문에 모자를 두 개 장착하려 하기 때문이다.</p>
<p>이러다보면 물약 계열 아이템 몇 개와 다른 직업군인 캐릭터를 위한 아이템 몇 개를 보관하다보면 18칸(최대 27칸) 인벤토리는 순식간에 가득 찬다. 이 현상은 게임 초반부터 발생한다.</p>
<p><strong>상당 수 아이템이 “직업 &amp;&amp; 레벨” 조합이라는 제약</strong>을 받다보니 다른 사람한테 선물하기도 쉽지 않다. 직업이 다양한데다 레벨도 제각각이기 때문에 선물 주고 받는 사회성 가득한 상호작용을 한다기 보다는 그냥 버리게 된다.</p>
<p>&#8230;</p>
<p>인벤토리 UI상 실수도 있는데, <strong>아이템을 선물할 때 캐릭터가 아닌 이용자(계정)를 선택</strong>하는 것이다. 이는 캐릭터 마다 구분되는 인벤토리를 갖지 않고 계정에 인벤토리 하나가 할당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선물로 줄만한 아이템은 직업 제약을 받기 때문에 “선물받을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캐릭터”여야 한다. 내가 마법사용 레벨 16짜리 모자를 홍길동에게 선물하려는데 정작 홍길동는 마법사 캐릭터를 키우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람? 설령 있더라도 그 캐릭터가 레벨 10이라면?</p>
<p>그래서 물약같은 소모성 아이템을 선물로 주고 받는 것이 여러모로 실속있다. 직업과 레벨에 귀속되는 장비보다 훨씬 사용성이 좋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게임은 파티 플레이를 기준으로 전투 밸런싱이 맞춰져 있어서 나보다 레벨이 높은 다른 이용자의 캐릭터를 파티로 데려와 게임을 하면 물약이 남아 돈다는 점이다. 절실하지 않은 선물을(물약) 받아봐야 그다지 기쁘진 않다.</p>
<p>물론, 이런 인벤토리 압박은 추후 인벤토리를 돈으로 사서 확장할 수 있게 하려는 사전 작업일 가능성이 크다. 근데 이 압박은 은근하게 작용하여 자연스레 인벤토리 구매를 유도해야 하는데, <strong>현재 버디러시는 압박을 넘어서 고통 단계에 이르고 있다</strong>는 점이 아쉽다. “고통”으로 작용하기 시작하면, 이 고통을 해소시켜주는 진통제(인벤토리 확장)가 게임의 밸런싱을 망가뜨릴 가능성이 커진다는 걸 뜻한다. 현재 잘 잡힌 균형감이 인벤토리 문제 하나로 무너질 수 있다.</p>
<p>좋은 점과 안 좋은 점 모두를 가져서 판단하기 애매한 UI도 있는데, 인벤토리가 꽉 찬 상태에서 퀘스트를 깨면 보상 아이템을 얻지 못 하는데 이때 인벤토리가 꽉 차서 아이템을 받지 못 한다는 안내이다. <del>장비는 메일함으로 보내주지만 소모성 아이템은 그냥 날리는 것이다.</del>퀘스트 보상은 메일함으로 보내주지만, 퀘스트를 깨고 나서 상자를 열어 아이템을 얻는 기회는 날리는 것이다. 인벤토리가 꽉 찰 정도면 물약도 남아도는 상태이기 때문에 인벤토리가 꽉 차서 아이템을 받지 못 해도 그렇게 억울할 건 없다. 하지만, <strong>이용자가 “손해본다”고 느끼는 것이 문제</strong>이다. 아예 안 주는 것과(즉 준다 안 준다 안내 조차 없는 것) 주려는데 주지 않겠다는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있다.</p>
<p>인벤토리를 한두 칸 비워놔도 퀘스트 수행 중에 아이템을 얻기도 하므로 “손해본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p>
<p>&#8230;</p>
<p>버디러시는 분명 잘 만든 게임이다. 컨텐츠 소비나 게임 진행 강약 조절 등 시스템 전체 레벨 디자인과 균형감 모두 훌륭하다. 그런 안정감 속에서 인벤토리가 버디러시 게임 특성을 살려주는 훌륭한 창고 역할을 할지, 화약고가 될지는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현재로써는 여러모로 아슬아슬한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것 같다.</p>
<p>정리하면, 아이템 순환율은 낮은 편인데 인벤토리 공간은 부족하다. <img src='http://www.hannal.net/think/wp-includes/images/smilies/icon_smile.gif' alt=':)' class='wp-smiley' />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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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 해에 책 100권 읽는 목표를 달성하고, 후회한다.</title>
		<link>http://www.hannal.net/think/absolutely_do_not_read_many_books_within_a_certain_period/</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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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31 Dec 2009 08:20:49 +0000</pubDate>
		<dc:creator>Hannal</dc:creator>
				<category><![CDATA[생각한다]]></category>
		<category><![CDATA[독서]]></category>
		<category><![CDATA[책읽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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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 책 100권 읽기 목표를 달성하고, 후회하다 2008년 말에 2009년 한 해 동안 책을 100권 읽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목표는 12월 23일에 달성했다. 목표를 달성하고 나서 앞으로 두 번 다시는 기간을 정해서 얼마만큼 책을 읽겠다는 목표를 세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알고 보면 이미 여러 사람이 이런 다독을 권하지 않았다. 나 역시 이미 그런 권고를 알고 있었지만,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h3>1. 책 100권 읽기 목표를 달성하고, 후회하다</h3>
<p>2008년 말에 2009년 한 해 동안 책을 100권 읽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목표는 12월 23일에 달성했다. <strong>목표를 달성하고 나서 앞으로 두 번 다시는 기간을 정해서 얼마만큼 책을 읽겠다는 목표를 세우지 않겠다고 다짐</strong>했다.</p>
<p>알고 보면 이미 여러 사람이 이런 다독을 권하지 않았다. 나 역시 이미 그런 권고를 알고 있었지만, 이해하고 마는 것과 경험하여 깨닫는 것은 다르다. 난 무엇이 다른지 직접 후회하려고 도전했었다.</p>
<h3>2. 목표를 달성하려는 노력과 변화</h3>
<p>1년에 100권을 읽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365일로 계산을 해도 3~4일에 한 권, 주 단위로 계산해도 1주에 2권은 읽어야 한다. 예전에는 한 해에 대체로 50~70권 정도를 읽어 왔으므로 예전보다 1.5~2배가량 “빨리” 읽어야 했다.</p>
<p>빨리 달리겠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갑자기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달리는 습관, 달리기에 좋은 신발 등 여러 가지를 조정해야 한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100권을 읽을 방법을 구상했다.</p>
<h4>2.1. 새로 고안한 방법</h4>
<p>우리 뇌는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에 매우 잘 휩쓸리는 데다가 실제와 가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상황에 몰입하면 가상인데도 마치 실제처럼 받아들여 강한 동력을 얻는다. 그래서 관심과 신경, 목표를 향하게 하는 대상을 눈으로 자주 보는 게 좋다. 가족사진, 목표, 사명 같은 것이 그렇다.</p>
<p style="text-align: center;"><img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350" src="http://www.hannal.net/think/wp-content/uploads/2009/12/book_scheduler.jpg" alt="" width="450" height="337" /></p>
<p>난 방 창문에 커다란 책 도장 종이를 붙이고, 이곳에 <strong>읽은 책 이름을 하나씩 잘 보이게 썼다</strong>. 일부러 만든 건 아니고,  우연히 어린이용 책도장 종이를 얻어서 요긴하게 썼다. “지금이 6월이고 40권을 읽었으니까 남은 6개월 동안 60권을 읽으려면 더 노력해야겠군”이라고 이성이 계산하고 판단하는 것보다 “헐&#8230; 아직 이만큼밖에 못 채웠네?”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상황판을 보는 게 더 강한 동기를 부여한다.</p>
<p>또 하나는 책을 이어서 읽는 방식이다. 새 분야 책을 시작하면 그 분야에서 쓰는 표현에 익숙해져야 한다. 용어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문장 형식이나 낱말에 익숙해져야 그 분야 글쓴이들과 친숙해져서 책으로 글쓴이와 대화하는 상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p>
<p>집중하고 그 상태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유지는커녕 집중 상태에 빠지는 것부터 적잖은 비용이 필요하다. 기껏 익숙해졌는데 새로운 분야 책을 집어들어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면 다시 집중 상태를 시작하는 비용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 <strong>책을 관련 분야별로 이어서 읽는 건 집중력을 유지</strong>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p>
<h4>2.2. 기존 습관을 보완</h4>
<p><a href="http://www.hannal.net/blog/a_method_how_i_read_a_book/">기존에 책 읽던 습관</a>에도 변화를 줬다. 예전에는 여러 책을 한 번에 읽었다. 대중교통 탈 때, 자기 전에, 화장실에 있을 때, 혹은 이도 저도 아니어서 무척 애매할 때와 같이 상황에 따라 읽는 책을 따로 구분해서 읽었다. 하지만, 올해엔 <strong>집중력을 유지하려고 한 번에 두 권을 읽는다. 하나는 집 밖에서, 다른 하나는 집 안에서</strong> 읽는다.</p>
<p>이러한 방법들은 평소 생활 습관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고안한 것이다. 꼭 100권 읽기 목표 때문이 아니더라도 다소 산만한 독서 습관을 바꾸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100권 읽기, 즉 빨리 읽는 것이라서 계획하지 않았던 변화도 함께 찾아왔다.</p>
<h3>3. 목표 달성을 노력하는 중에 찾아온 변화</h3>
<h4>3.1. 좋게 보는 변화</h4>
<p>좋은 변화 중 하나는 <strong>시간을 좀 더 잘 관리하게 된 점</strong>이다. 바깥에서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책을 읽는다. 버스는 많이 흔들려서 앉지 않으면 읽기 힘들므로 지하철을 선호한다. 더구나 지하철은 자동차보다 시간 예측을 하기에 쉽고 편하다. 버스는 매 정거장을 의식해야 하지만, 지하철은 정거장 수에 2분을 곱하면 대략 도착 예정 시각이 되어 전화기에 알림 설정을 해서 시간 신경 쓰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버스와 지하철로 갈 수 있고, 각 교통수단을 이용했을 때 걸리는 시간에 큰 차이가 없으면 일부러 지하철을 탔다.</p>
<p>시간을 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되면 시간과 일정을 관리하기 좋아진다. 혹자는 이렇게 시각 딱딱 맞추며 사는 게 피곤할 것이라고 하지만, 각 일정 시간을 예측하지 못해 각 일정 배치가 수시로 바뀌는 것이 훨씬 피곤하다. 책을 더 읽으려고 지하철을 더 선호한 행동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꼼꼼한 시간 관리를 몸에 더 익히는 계기가 되었다.</p>
<p>두 번째 좋은 변화는 <strong>책을 읽는 행동이 무의식 속에서 나타나는 행동에 녹아들었다는 점</strong>이다. 가려우면 무심코 긁듯이 책을 읽겠다는 생각도 없이 무심코 책을 들어 읽게 됐다. 예전엔 책을 읽으려고 의식했는데, 100권 읽기 목표를 세운 뒤로는 짬짬이 나는 시간을 다른 데 쓰지 말고 책을 읽자고 더 강하게 의식했다.</p>
<p>의식 속에서 지속하는 행동은 무의식 속에서 이뤄지는 행동보다 몸과 머리에 부담을 준다. 의자에 앉아서 무의식 중에 다리를 달달 떨면 별로 지치는 기색도 없지만, 단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드럼을 연습하려고 일부러 뒤꿈치를 들어 다리를 달달 떨면 금방 종아리에 쥐가 난다. 무의식 중에 책을 읽으므로 책을 읽으며 끊임없이 돌아가는 것보다 머릿속 회로는 산소와 핏속 당을 덜 소비하는 것 같다.</p>
<p>물론, 특정 목적, 이를테면 드럼 베이스를 잘 두드려야 하는 목적에 기준을 두면 의자에 앉아 무의식 중에 다리를 떠는 행동은 그다지 유의미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무의식 중에 책을 읽다 보면 무의식 중에 문장을 흘려 넘기는 경우도 생기곤 한다.</p>
<h4>3.2. 후회하게 만든 변화</h4>
<p>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100권 읽기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을 하면서 잘못된, 혹은 안 좋게 보는 변화도 있다. 이 변화 하나 때문에 2009년에 책 100권 읽겠다는 목표 달성을 뼈저리게 후회한다. 바로 <strong>내용을 담은 묶음이 아닌 글자를 담아 묶어낸 물체로써 책을 읽은 것</strong>이다.</p>
<p>예년과는 달리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꺼내 읽는 빈도가 많이 줄었다. 더 깊이, 그리고 넓게 접하려고 많이 읽는 게 아니라 <strong>단지 많이 읽으려고 많이 읽는 것</strong>이다 보니 시간 부담을 안게 되고, 그래서 자연스레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꺼내 읽는 일이 많이 줄었다.  글을 익히려고 책을 읽기도 하지만, 책에 담겨 있는 내용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데 목적을 둔다면 몇 번이든 책을 읽을 수 있고 그래야 하는 경우가 많다.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을 때 단방향으로 배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strong>자신의 생각과 의문을 표하며 양방향으로 소통해야 더 깊고 짜임새 있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strong>. 책도 마찬가지여서 내용을 읽는 데 그치지 말고, 책 속에 녹아들어 있어서 마치 책이라는 벽 뒤에 숨어 있는 것처럼 쉽사리 보이지 않는 <strong>글쓴이를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봐야 한다. 그리고 소통해야 한다</strong>.</p>
<p>책이라는 매개체와 책에 쓰여 있는 글자는 글쓴이의 생각을 재현한 기호와 물체일 뿐이다. 기호는 본질을 재현하려고 흉내를 낼 뿐, 결코 본질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strong>글자에서 뜻을 얻는 데 그치지 말고 그 너머에 있는 글쓴이를 마주 대하여 그 사람 머릿속에서 나온 본질을 읽어야 한다</strong>. 책 속에서 글쓴이를 찾을 수 없는 책은 둘 중 하나이다. 내가 책을 소화하지 못하여 글자라는 기호 벽을 넘지 못했거나 혹은 애초 글쓴이가 담겨 있지 않았거나. 후자에 속하는 책은 읽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p>
<h3>4. 다시는 하지 않으리</h3>
<p>2009년 12월 23일에 100번째 책을 덮으면서 100권 읽기 목표는 달성했다. 실은 50권째 책을 다 읽은 5월부터 후회하기 시작했다. 100권에 담겨있는 수백, 수천만 글자는 다 읽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내용은 읽지 못했다. 앞으로 나는 절대로 정한 기간에 얼마만큼 책을 읽겠다는 목표를 세우지 않을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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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title>
		<link>http://www.hannal.net/think/communication_for_trust/</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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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9 Dec 2009 04:01:52 +0000</pubDate>
		<dc:creator>Hannal</dc:creator>
				<category><![CDATA[생각한다]]></category>
		<category><![CDATA[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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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신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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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 적어도 상대방만큼은 만족스럽게 느끼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다. 나 자신도 그런 소통 만족감을 느끼려면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로 내가 해야 할 말을 하는 것이다. 변치 않는 점은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이라는 것이고, 주의해야 할 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말을 하는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 적어도 상대방만큼은 만족스럽게 느끼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strong>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것</strong>이다. 나 자신도 그런 소통 만족감을 느끼려면 <strong>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로 내가 해야 할 말을 하는 것</strong>이다. 변치 않는 점은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이라는 것이고, 주의해야 할 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말을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건 당장은 소통이 잘 이뤄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결국 상대방이 느끼는 소통 만족감은 떨어진다.</p>
<p>소통 만족감을 높이는 좋은 방법으로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라 했는데, 사람은 상대방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성으로든 본능으로든 누구나 이기성을 발휘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접하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strong>불필요한</strong> 정보는 최대한 걸러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p>
<p>자신에게 적합한 정보만 걸러내서 듣기 때문에 자연스레 사람은 걸러낸 그 정보에 근거해서 판단하고 인지하며, 결국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 본다. 같은 사실이나 사물, 즉 같은 현실에 있는데도 개개인은 서로 다른 현실을 사는 것이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이미 형성된 자신의 현실과 세계관을 깨뜨리기란 대단히 어렵다. <strong>누군가 자신의 세계를 건드리면 자연스레 공격받는다고 느끼고는</strong> 움츠러들거나 반발하게 된다. 상대방이 소통 만족감을 느끼게 하려면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해야 할 말”이란 결국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에 가깝다.</p>
<p>많은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할 말”로 착각한다. 이 둘은 전혀 다르다. “하고 싶은 말”은 말 시작부터가 <strong>자기 자신</strong>이다. 상대방이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상관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고 내가 만족하면 그만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곧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이런 소통도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에서 먼저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일 아주 낮은 가능성에 기대야 한다. 이런 불확실성에 내 신뢰를 거는 게 과연 합리성 있는 것일까?</p>
<p><strong>사회는 소통이라는 연결 끈으로 구성된 거대한 그물</strong>이다.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도시, 즉 사회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은 소통 수단 중 하나인 눈이 막혔을 뿐 다른 소통은 가능했기 때문이며, 이 소통으로 새로운 사회 규칙을 만들어갔다. 이말인 즉, 소통에 능할수록 사회에서 잡을 기회가 늘고 이뤄낼 가능성도 크다. 이 소통은 “해야 할 말”인 척하는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strong>“해야 할 말”에 “하고 싶은 말”을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로 담아서 전달</strong>하면 된다. 이 말이 너무 단순해서 시시하게 느껴지지만, 이 시시할 정도로 단순한 걸 제대로 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대다수 사람은 하고 싶은 말만 하거나,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해야 할 말로 할 뿐이다.</p>
<p>하고 싶은 말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하면 상대방이 자신을 진실하다고 생각할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서로가 서로에게 진실을 본다는 말은 신뢰, 즉 믿음이 형성됐다는 것인데 이 <strong>신뢰는 소통에서 대부분 이뤄지며, 상대방의 가치관(세계, 현실)을 지켜주는 선에서 내 생각을 전달했을 때 비로소 상대방이 내게 신뢰를 품게 된다</strong>. 즉,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해야 하는 것이다.</p>
<p>“하고 싶은 말”은 하기 쉬운 데 반해 다루기는 퍽 까다롭다. 하기 쉬운 이유는 말 시작점이 자신이기 때문이다. 다루기 까다로운 이유는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서 많이 쓰면 대체로 내 신뢰가 깎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에게서 꺼낼 말이 일어나고, 그 뒷수습도 자신이 다 해야 한다.</p>
<p>예를 들어, 다른 사람 뒷이야기는 “해야 할 말”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인 경우가 아주 흔한데, 다른 사람 뒷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치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많은 신뢰를 받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혹은,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욕을 하는 것도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이나 자신이 해야 할 말이 아니라 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다. 지금 당장 개운해지려고 하고 싶은 말을 한다면 차츰 자신의 신뢰도는 떨어질 것이다.</p>
<p>“해야 할 말”은 하기 쉽지 않지만 다루기는 “하고 싶은 말”보다는 덜 까다롭다. 시작이 쉽지 않은 건 상대방이 누구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방에 맞춰 해야 할 말을 하면 그 이후는 상대방이 뒷처리한다. 말은 자신이 했으되 일단 말 시작점을 상대방에게 놓는 데 성공하면 그 이후 운영은 상대방이 맡아서 사실상 상대방 말이 되기 때문이다.</p>
<p>해야 할 말만 간결하게 조금하고 나머지는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듣기만 하면 상대방은 충분한 소통을 나누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내가 한 말까지도 상대방은 자신이 한 말처럼 포용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하고 싶은 말도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로 다듬어서 해야 할 말에 담아내면 상대방은 솔직함 마저 느끼게 된다.</p>
<p>그 누구도 없이 자신만 존재하는 사회를 형성해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이미 많은 이가 서로 이어져있는 이 사회에서 산다면 나 자신을 중심에 둔, 즉 시작점에 둔 소통이 아니라 상대방에 시작점을 둔 소통을 하는 것이 좋다. 심리 저항선<small>(이를테면, 자존심으로 가장한 이기심)</small>을 이겨내면, 상대방에 생각과 말의 시작점을 두고 소통을 한다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자제하고 해야 할 말을 주로 한다면, 내가 말을 하기 보다는 상대방이 말을 하게 한다면<small>(실은 해야 할 말만 하면 자연스레 내가 말하는 빈도는 줄고 상대방이 말하는 빈도는 는다)</small>, 우리의 소통은 더 만족스러워 질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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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공자, 주유천하를 떠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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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5 Apr 2009 08:13:43 +0000</pubDate>
		<dc:creator>Hannal</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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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논어나 유교로, 혹은 시를 노래하듯 공자왈 맹자왈이라는 표현으로 유명한 공자. 공자의 삶은 참으로 불우했다. 되는 일 하나 없었다. 춘추시대 말기는 대단히 혼란스러워서 초나라, 노나라, 제나라 등 여러 나라들은 공자의 높은 이상과 깊은 학문 성취를 토대로 정치를 하려 하는 마음보다는 부국강병 묘책을 찾고자 했다. 즉, 공자의 정치 견해는 이론과 이상에 치우쳐져 실용성이 떨어진다고 여겼고, 공자는 쉰살이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논어나 유교로, 혹은 시를 노래하듯 공자왈 맹자왈이라는 표현으로 유명한 공자. 공자의 삶은 참으로 불우했다. 되는 일 하나 없었다. 춘추시대 말기는 대단히 혼란스러워서 초나라, 노나라, 제나라 등 여러 나라들은 공자의 높은 이상과 깊은 학문 성취를 토대로 정치를 하려 하는 마음보다는 부국강병 묘책을 찾고자 했다. 즉, 공자의 정치 견해는 이론과 이상에 치우쳐져 실용성이 떨어진다고 여겼고, 공자는 쉰살이 되도록 제대로 된 관직을 얻지 못하거나 하급 관직을 맡았을 뿐이다.</p>
<p>정말 공자의 정견은 실용성이 없었을까? 공자의 정치 이상을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정명론(正名論)이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는 것이다. 맞는 말인데 너무 이상에 치우쳐진 말로 받아들일 만 하다. 그렇다면 공자는 이상론자였을까? 공자께서 염구와 나눈 이야기를 보면 그런 것 같진 않다.</p>
<blockquote><p>공자 말씀하셨다. “백성이 참으로 많구나”</p>
<p>이에 염구가 물었다. “백성이 많아져 번영하고 있다면 그 다음엔 무엇을 해야 할까요?”</p>
<p>공자께서 답하셨다. “부유하게 해야지”</p>
<p>염구가 물었다. “부유해지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p>
<p>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르쳐야지”</p>
<p style="text-align: right;">- <a href="http://ingee.tistory.com/352">논어 13장(자로) 09절</a></p>
</blockquote>
<p>헐벗고 굶주린다면 제아무리 훌륭한 인과 예를 말한다 하더라도 듣고 행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p>
<p>또, 군자는 옳고 그른 것을 가려 옳은 것을 좇아야지 무턱대고 신의랍시고 지키려 해서는 안 된다(貞而不諒)고 하였다. 원칙이나 이론에 갇혀 꽉 막힌 융통성 없이 처신하지 않고 각 때에 알맞은 행동을 했다. 즉, 공자가 이론주의자라서 그렇다기 보다는 시대를 잘못 탔을 뿐이다. 하지만, 공자는 평생을 제대로 관직에 올라 뜻을 제대로 펼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이뿐만 아니라 공자의 삶은 고난과 역경 자체였다.</p>
<p>3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17세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주유천하를 하는 동안에는 민병대에게 오해를 사서 포위 당한 채 죽을 뻔 하기도 하고, 공자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환퇴는 커다란 나무 밑동을 베어 나무 테러를 하고 연이어 자객으로 하여금 암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게다가 패잔병을 만나 식량과 마차 등을 몽땅 빼앗긴 채 9일을 쫄쫄 굶기도 한다.</p>
<p>게다가 자신을 써줄 임금과 나라를 찾아 떠난 주유천하는 실패로 끝난 채 맞이한 70살에 이르렀을 때 아들이 죽었는데 관을 넣을 곽을 살 돈조차 없었고, 얼마 뒤  가장 사랑하는 제자인 안연(안휘)이 가난하게 살다 영양실조로 젊은 나이에 죽었다. 안연이 죽었을 때 “아,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라며 크게 슬퍼하였다. 또한, 제자 자로는 정치에 휘말려 살해 당하고 젓갈로 담가지며 시신을 모독 당했다. 이에 공자는 “아, 하늘이 마침내 나를 끊어버리는구나!”라며 슬퍼하였다.</p>
<p>하지만, 공자는 좌절하거나 타협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러하지 않았기에 되는 일 하나 없이 힘들게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비관주의자나 냉소주의자가 되거나 좌절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바로 춘추(역사책)를 저술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단 책 쓰는 것만으로 공자가 포기하지 않거나 타협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기원전 5세기에 50대 중반 나이는 요즘 우리 나이로 치면 70살에 육박하는 나이라 생각한다. 그 나이에 하루에도 많은 도시 국가가 생기고 사라지는 춘추시대에 작은 나라 하나 세울 수 있음에도 인과 예를 지키려 자신을 알아보고 써줄 임금을 찾아 길을 떠나 14년을 천하를 다닌다.</p>
<p>요즘 나이 70살은 커녕 우리가 당시 공자 나이 55살에도 과연 자신의 이상을 펼치기 위해 고향을 쉽사리 떠날 수 있을까? 일찍이 학문의 극에 달하였으나 20여 년 거듭 기회가 따르지 않았는데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길을 떠날 수 있을까? 55세 공자가 14년이 걸린 주유천하를 떠났음은 온갖 역경과 시련이 닥쳐도 굴복하거나 좌절, 포기하지 않는 청년 정신을 뜻한다. 꺼지지 않는 열정이다.</p>
<p>우리에게 고난과 시련이 닥치곤 한다. 그것을 피하거나 받아들이거나, 어려워하거나 차분히 해결해나가거나, 좌절하거나 도전하는 것은 우리의 그릇 크기에 달렸다. 하지만,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그릇은 얼마만한 지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살이 에이는 차가운 바람에 잠시 균형을 잃어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날 수 있다. 그런다고 해서 우리 삶은 꺼지지 않는다. 잠시 몸을 숙여 방향과 균형을 가다듬고 땅을 밀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한 가르침을 공자는 몸소 보여주었다.</p>
<p>공자, 55세 나이에 세상을 향해 길을 떠났다. 지치지 않는 청년 정신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비록 길을 떠나는 그 마음은 참담했을지라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2,000년이 넘는 지금까지 그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미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의지 때문이 아닐까. 천 년이 아니더라도 우리 역시 정도(正道)와 인도(人道)를 따라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다면 우리의 생각과 철학이 우리 삶 안에서라도 굳게 남아 자신을 잃지 않게 붙잡아주지 않을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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