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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날은 생각한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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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여러 이야기거리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보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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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공자, 주유천하를 떠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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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5 Apr 2009 08:13:43 +0000</pubDate>
		<dc:creator>Hannal</dc:creator>
				<category><![CDATA[생각한다]]></category>
		<category><![CDATA[공자]]></category>
		<category><![CDATA[도전]]></category>
		<category><![CDATA[청년정신]]></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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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논어나 유교로, 혹은 시를 노래하듯 공자왈 맹자왈이라는 표현으로 유명한 공자. 공자의 삶은 참으로 불우했다. 되는 일 하나 없었다. 춘추시대 말기는 대단히 혼란스러워서 초나라, 노나라, 제나라 등 여러 나라들은 공자의 높은 이상과 깊은 학문 성취를 토대로 정치를 하려 하는 마음보다는 부국강병 묘책을 찾고자 했다. 즉, 공자의 정치 견해는 이론과 이상에 치우쳐져 실용성이 떨어진다고 여겼고, 공자는 쉰살이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논어나 유교로, 혹은 시를 노래하듯 공자왈 맹자왈이라는 표현으로 유명한 공자. 공자의 삶은 참으로 불우했다. 되는 일 하나 없었다. 춘추시대 말기는 대단히 혼란스러워서 초나라, 노나라, 제나라 등 여러 나라들은 공자의 높은 이상과 깊은 학문 성취를 토대로 정치를 하려 하는 마음보다는 부국강병 묘책을 찾고자 했다. 즉, 공자의 정치 견해는 이론과 이상에 치우쳐져 실용성이 떨어진다고 여겼고, 공자는 쉰살이 되도록 제대로 된 관직을 얻지 못하거나 하급 관직을 맡았을 뿐이다.</p>
<p>정말 공자의 정견은 실용성이 없었을까? 공자의 정치 이상을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정명론(正名論)이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는 것이다. 맞는 말인데 너무 이상에 치우쳐진 말로 받아들일 만 하다. 그렇다면 공자는 이상론자였을까? 공자께서 염구와 나눈 이야기를 보면 그런 것 같진 않다.</p>
<blockquote><p>공자 말씀하셨다. “백성이 참으로 많구나”</p>
<p>이에 염구가 물었다. “백성이 많아져 번영하고 있다면 그 다음엔 무엇을 해야 할까요?”</p>
<p>공자께서 답하셨다. “부유하게 해야지”</p>
<p>염구가 물었다. “부유해지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p>
<p>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르쳐야지”</p>
<p style="text-align: right;">- <a href="http://ingee.tistory.com/352">논어 13장(자로) 09절</a></p>
</blockquote>
<p>헐벗고 굶주린다면 제아무리 훌륭한 인과 예를 말한다 하더라도 듣고 행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p>
<p>또, 군자는 옳고 그른 것을 가려 옳은 것을 좇아야지 무턱대고 신의랍시고 지키려 해서는 안 된다(貞而不諒)고 하였다. 원칙이나 이론에 갇혀 꽉 막힌 융통성 없이 처신하지 않고 각 때에 알맞은 행동을 했다. 즉, 공자가 이론주의자라서 그렇다기 보다는 시대를 잘못 탔을 뿐이다. 하지만, 공자는 평생을 제대로 관직에 올라 뜻을 제대로 펼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이뿐만 아니라 공자의 삶은 고난과 역경 자체였다.</p>
<p>3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17세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주유천하를 하는 동안에는 민병대에게 오해를 사서 포위 당한 채 죽을 뻔 하기도 하고, 공자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환퇴는 커다란 나무 밑동을 베어 나무 테러를 하고 연이어 자객으로 하여금 암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게다가 패잔병을 만나 식량과 마차 등을 몽땅 빼앗긴 채 9일을 쫄쫄 굶기도 한다.</p>
<p>게다가 자신을 써줄 임금과 나라를 찾아 떠난 주유천하는 실패로 끝난 채 맞이한 70살에 이르렀을 때 아들이 죽었는데 관을 넣을 곽을 살 돈조차 없었고, 얼마 뒤  가장 사랑하는 제자인 안연(안휘)이 가난하게 살다 영양실조로 젊은 나이에 죽었다. 안연이 죽었을 때 “아,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라며 크게 슬퍼하였다. 또한, 제자 자로는 정치에 휘말려 살해 당하고 젓갈로 담가지며 시신을 모독 당했다. 이에 공자는 “아, 하늘이 마침내 나를 끊어버리는구나!”라며 슬퍼하였다.</p>
<p>하지만, 공자는 좌절하거나 타협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러하지 않았기에 되는 일 하나 없이 힘들게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비관주의자나 냉소주의자가 되거나 좌절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바로 춘추(역사책)를 저술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단 책 쓰는 것만으로 공자가 포기하지 않거나 타협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기원전 5세기에 50대 중반 나이는 요즘 우리 나이로 치면 70살에 육박하는 나이라 생각한다. 그 나이에 하루에도 많은 도시 국가가 생기고 사라지는 춘추시대에 작은 나라 하나 세울 수 있음에도 인과 예를 지키려 자신을 알아보고 써줄 임금을 찾아 길을 떠나 14년을 천하를 다닌다.</p>
<p>요즘 나이 70살은 커녕 우리가 당시 공자 나이 55살에도 과연 자신의 이상을 펼치기 위해 고향을 쉽사리 떠날 수 있을까? 일찍이 학문의 극에 달하였으나 20여 년 거듭 기회가 따르지 않았는데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길을 떠날 수 있을까? 55세 공자가 14년이 걸린 주유천하를 떠났음은 온갖 역경과 시련이 닥쳐도 굴복하거나 좌절, 포기하지 않는 청년 정신을 뜻한다. 꺼지지 않는 열정이다.</p>
<p>우리에게 고난과 시련이 닥치곤 한다. 그것을 피하거나 받아들이거나, 어려워하거나 차분히 해결해나가거나, 좌절하거나 도전하는 것은 우리의 그릇 크기에 달렸다. 하지만,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그릇은 얼마만한 지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살이 에이는 차가운 바람에 잠시 균형을 잃어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날 수 있다. 그런다고 해서 우리 삶은 꺼지지 않는다. 잠시 몸을 숙여 방향과 균형을 가다듬고 땅을 밀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한 가르침을 공자는 몸소 보여주었다.</p>
<p>공자, 55세 나이에 세상을 향해 길을 떠났다. 지치지 않는 청년 정신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비록 길을 떠나는 그 마음은 참담했을지라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2,000년이 넘는 지금까지 그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미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의지 때문이 아닐까. 천 년이 아니더라도 우리 역시 정도(正道)와 인도(人道)를 따라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다면 우리의 생각과 철학이 우리 삶 안에서라도 굳게 남아 자신을 잃지 않게 붙잡아주지 않을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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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Django 1.0에서 Admin 기능 쓰기 &#8211; 부록편</title>
		<link>http://www.hannal.net/think/99_1-python_django_lecture/</link>
		<comments>http://www.hannal.net/think/99_1-python_django_lecture/#comments</comments>
		<pubDate>Sun, 01 Feb 2009 13:59:26 +0000</pubDate>
		<dc:creator>Hannal</dc:creator>
				<category><![CDATA[파이썬이나 django]]></category>
		<category><![CDATA[admin]]></category>
		<category><![CDATA[django]]></category>
		<category><![CDATA[부록]]></category>
		<category><![CDATA[장고]]></category>
		<category><![CDATA[파이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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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이 연재글은 “날로 먹는 Django 웹 프로그래밍 강좌” 을 보완하여 현재 정식으로 배포되고 있는 Django 1.0판에서 제대로 작동시키는 내용을 담습니다. 또, 본 강좌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 일부를 추가하려 합니다. 즉, 새 강좌 연재는 아니고, 부록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이번 글에서는 Django 1.0판부터 바뀐 Admin 영역을 다루겠습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안녕하세요,<span> </span>한날입니다.</p>
<p>오랜만에 Django 강좌 글로 뵙습니다.</p>
<p>지난 <span>2008</span>년 <span>8</span>월에 강좌 연재를 마친 뒤 얼마 후에 Django 1.0판이 새로 나왔습니다. 꽤 많은 점이 바뀌었더군요. 대체로 이전 정식판인 0.96를 기준으로 개발한 코드라도 잘 작동하는데, 일부 기능은 아예 작동하지 않기도 합니다.</p>
<p>이 연재글은 “<a href="http://www.hannal.net/think/01-python_django_lecture/">날로 먹는 Django 웹 프로그래밍 강좌</a>” 을 보완하여 현재 정식으로 배포되고 있는 Django 1.0판에서 제대로 작동시키는 내용을 담습니다. 또, 본 강좌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 일부를 추가하려 합니다. 즉, 새 강좌 연재는 아니고, 부록에 해당하는 것이지요.</p>
<p>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p>
<h3>Admin 영역 사용법 변화</h3>
<h4>admin.py 만들기</h4>
<p>“<a href="http://www.hannal.net/think/05_1-python_django_lecture/">청) 컨트롤러(뷰) &#8211; 글 목록과 글 보기 기능 (5편 1/3)</a>”에서 Django의 Admin 영역/기능을 다룹니다. 그런데 1.0판부터 Admin 기능을 쓰는 방법이 크게 바뀌었습니다.</p>
<p>기존에는 각 모델마다 Admin 이라는 클래스를 만들어서 썼습니다.</p>
<blockquote>
<pre><code>class Entries(models.Model):
    Title = models.CharField(max_length=80, null=False)

    class Admin:
        pass</code></pre>
</blockquote>
<p>이런 식이죠. 하지만, 1.0판부터는 admin.py파일을 따로 만들어야 합니다.<sup><a href="http://www.hannal.net/think/99_1-python_django_lecture/comment-page-1/#comment-226">참고1)</a></sup></p>
<p>이 파일은 각 어플리케이션마다 씁니다. 본 강좌에서 우리는 blog 라는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었는데(manage.py startapp blog), 이 어플리케이션 안에, 그러니까 어플리케이션 디렉토리(폴더) 안에 admin.py 파일을 만들면 됩니다.</p>
<p>admin.py 파일을 만든 뒤 관련 모듈을 가져오겠습니다.</p>
<blockquote>
<pre><code>from django.contrib import admin</code></pre>
</blockquote>
<p>이 admin 모듈을 써서 Django admin 영역에서 다룰 모델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바로 admin.site 에 있는 register 메서드, 즉 admin.site.register 로 하는 것이지요.</p>
<p>먼저 Admin 영역에서 다룰 모델을 가져옵니다. 편의상 Entries 를 해보겠습니다.</p>
<blockquote>
<pre><code>from hannal.blog.models import Entries</code></pre>
</blockquote>
<p>from 경로는 여러분이 어떻게 프로젝트를 만들고 어플리케이션 이름을 지었는지에 따라 다릅니다.</p>
<p>이렇게 가져온 모델을 admin.site.register 로 등록합니다.</p>
<blockquote>
<pre><code>admin.site.register(Entries)</code></pre>
</blockquote>
<p>이렇게 하면 Django admin 영역에서 Entries 모델을 다룰 수 있습니다.</p>
<h4>Admin 영역에서 좀 더 예쁘게 하기</h4>
<p>Django admin 영역에서 다룰 모델을 등록하는 것 말고도 화면에 나타나는 영역을 바꿀 수 있습니다. 본 강좌에서는 “admin 영역에서 자료 좀 더 예쁘게 나타내기”라는 단락에 나와있지요. 이 부분도 Django 1.0판에서 조금 바뀌었습니다. Entries 모델을 기준으로 예를 들어서, 우리는 글 번호와 제목, 작성일시만 뜨게 해보겠습니다.</p>
<p>admin.site.register 위에 아래와 같이 클래스를 하나 만듭니다.</p>
<blockquote>
<pre><code>class EntriesAdmin(admin.ModelAdmin):
    pass</code></pre>
</blockquote>
<p>이 클래스는 Admin 영역에서 Entries 모델을 어떻게 출력하고 다루게 할 것인지에 대한 정보를 담는 역할을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잠시 뒤에 하기로 하고 우선 pass 로 빈 클래스를 만듭니다.</p>
<p>이 클래스를 방금 admin.site.register 로 Entries 모델을 등록하는 부분에 추가합니다.</p>
<blockquote>
<pre><code>admin.site.register(Entries, EntriesAdmin)</code></pre>
</blockquote>
<p>이렇게 register 메서드에 두 번째 인자로 넣는 겁니다.</p>
<p>이제 글 번호, 제목, 작성일시가 뜨게 해보겠습니다. 간단합니다. EntriesAdmin 클래스에 아래 내용을 써넣습니다.</p>
<p>list_display = (&#8217;id&#8217;, &#8216;Title&#8217;,'created&#8217;,)</p>
<p>list_display 라는 클래스 프로퍼티에 튜플 자료형으로 출력할 모델 요소를 문자열로 담는 겁니다. 기존 방법과 같습니다.</p>
<blockquote>
<pre><code>class EntriesAdmin(admin.ModelAdmin):
    list_display = ('id', 'Title','created',)</code></pre>
</blockquote>
<p>코드는 이렇게 생겼습니다.</p>
<p>이외에도 좀 더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공식 문서(<a href="http://docs.djangoproject.com/en/dev/ref/contrib/admin/#ref-contrib-admin">The Django admin site</a>)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p>
<h4>urls.py 내용 바꾸기</h4>
<p>이걸로 끝이면 좋겠는데, urls.py 에서 Admin 영역에 접근하는 방법도 바뀌었습니다.</p>
<p>먼저 urls.py 맨 위에다가</p>
<blockquote>
<pre><code>from django.contrib import admin
admin.autodiscover()</code></pre>
</blockquote>
<p>를 넣습니다. 그런 뒤 주소 체계는 아래와 같이 넣으면 됩니다.</p>
<blockquote>
<pre><code>    (r'^admin/(.*)', admin.site.root),</code></pre>
</blockquote>
<p>Django 1.0판에서 프로젝트를 만들면(django-admin.py startproject hannal) 이러한 내용은 이미 반영되어 있으니 크게 어렵진 않을 겁니다.</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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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회총지식 (Gross Societal Knowledge)</title>
		<link>http://www.hannal.net/think/gross_societal_knowledge/</link>
		<comments>http://www.hannal.net/think/gross_societal_knowledge/#comments</comments>
		<pubDate>Fri, 09 Jan 2009 07:33:09 +0000</pubDate>
		<dc:creator>Hannal</dc:creator>
				<category><![CDATA[생각한다]]></category>
		<category><![CDATA[개방]]></category>
		<category><![CDATA[공유]]></category>
		<category><![CDATA[사회총지식]]></category>
		<category><![CDATA[정보공유]]></category>
		<category><![CDATA[지식]]></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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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사회
사회는 여러 종류가 있다. 학교, 기업, 작은 모임, 비공개 모임, 경제 사회, 삽질 사회, 사기 사회, 비상식 사회, 유치한 사회. 공통점은 여러 사람이 모였다는 점인데, 사회란 공동생활을 하는 사람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故 피터 드러커는 오늘날 사회는 지식 사회이며, 지식 사회를 구성하는 지식 노동자가 성과를 올리는 데 필요한 연속성, 계속성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조직뿐이라고 했다.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h3>사회</h3>
<p>사회는 여러 종류가 있다. 학교, 기업, 작은 모임, 비공개 모임, 경제 사회, 삽질 사회, 사기 사회, 비상식 사회, 유치한 사회. 공통점은 여러 사람이 모였다는 점인데, 사회란 공동생활을 하는 사람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다.</p>
<p><span class="fs14"><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 onmouseover="javascript:UI.toolTip(event,{ layerFixed:true,mousemove:null}, 'center', this);">故 </span></span>피터 드러커는 오늘날 사회는 지식 사회이며, 지식 사회를 구성하는 지식 노동자가 성과를 올리는 데 필요한 연속성, 계속성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조직뿐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사회가 조직사회가 되는 것이라 했다.</p>
<p>조직과 사회는 다른 말이다. 이 구분 역시 피터 드러커의 말에서 따오자면, 조직은 공통의 목적을 위해 일하는 전문가로 구성된 인적집단이며, 조직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과제를 담당하는 사회를 위한 기관이다. 즉, 사회 속에 조직이 형성되는 것이다.</p>
<h3>국내총생산</h3>
<p>국내총생산(GDP : Gross Domestic Product)이란 나라 안에서 이뤄지는 생산 총합이다. 이 수치가 클수록 그 나라 경제력이 높다고 본다. 물론, 몇 가지 한계점이 있지만, 범세계 경제 체제가 자본주의를 따르므로 대체로 GDP가 나라 경제력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p>
<p>GDP를 올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생산한 생산물로 경제 활동을 하면 된다. 다소 무식하게 추상화해서 비유를 들면, 쌀 농사를 지어 혼자 먹는다면 경제 활동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GDP로 봤을 때 0원이다. 그러나 이 쌀을 누군가에게 판 뒤 그 돈으로 보리를 사다 먹으면, 심지어 자신이 판 쌀을 되사도 이는 경제 활동으로 측정되어 GDP 수치는 오른다.</p>
<p>참 불합리하고 모순된 것 같지만, 경제 사회(경제 체제)에서 생산물을 사회에 유통하여 현금이든 개인 만족감이든 가치를 일으키는 현상은 인정할 만하다. 그러므로 GDP 총액으로 각 나라가 가난한지 부자인지를 따지기보다는, 가치 생산 활동과 거래 활동이 일어나는 정도가 얼마만큼 되는지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을 참고하는 것이 낫다. 좋고 싫고, 옳고 그르고를 가를 것 없다.</p>
<p>개개인이 가진 어떤 가치, 위 비유로 보면 생산물을 다른 이가 가진 것과 교환을 할 때, 각 각이 가진 가치 크기를 제대로 측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돈이라는 도구를 만들어서 거래를 한다. 자신의 생산물로 돈을 산 뒤 이 돈을 팔아 다른 이의 생산물을 산다. 참 쉬운 개념이며 흐름이다.</p>
<h3>사회총지식 (Gross Societal Knowledge)</h3>
<p>앞선 단락에서 낱말 몇 개를 바꿔보자. 경제 사회는 지식 사회, 생산물(가치)은 지식으로 바꾸어서 경제 흐름을 보면, 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지식 총합을 사회총지식(GSK : Gross Societal Knowledge)이라고 부를 수 있다.</p>
<p>자본주의 경제 사회에서 생산물을 거래하는 경제 활동이 GDP를 키우듯, 지식 사회에서 지식을 거래하는 활동이 사회총지식(GSK)를 키운다. 꽉 움켜쥐고 혼자만 알고 있다면 그 지식이 사회에서 가치로 환원되는 값은 0에 가깝다. 그 사람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나 관계도가 10이라면 그 지식은 0에서 10 사이 정도 되는 사회 가치일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얼마라도 받고 지식을 공유한다면 그 지식은 비로소 10 이상이 될 수 있다. 여전히 10 미만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10 이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p>
<p>경제 거래 개체는 거래값이 0에 가까워질수록 경제 총합이 함께 떨어지는 경향이 강하다. 간단히 말해서 한 사람이 쌀 1kg을 각각 100명에게 100원에 팔면 그 사회의 총생산은 10,000원이 되고, 50원에 팔면 5,000원이 되는 것이다.</p>
<p style="text-align: center;">사람 수  X 개체 거래 값 = 가치 총합</p>
<p>이에 반해 지식 거래 개체는 지식 거래 값이 0에 가까워질수록 지식 총합이 늘어난다. 지식 하나를 100명에게 100원에 팔면 그 사회의 지식 총생산은 10,000원이 되고, 50원에 팔면 20,000원이 된다. 단, 지식을 팔면 그 지식을 고스란히 전수받는다는 전제를 따른다.</p>
<p style="text-align: center;">사람 수 * (지식개체 값 / 지식개체 거래값) = 가치 총합</p>
<p>즉, 지식은 공유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낮출수록 그 사회는 물론 지식 자체 가치도 오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식은 거래해서 취득하는 목표와 목적이라기보다는 수단이나 도구에 가깝다. 제조 활동으로 보면 원료(resource)이다. 개개인은 가진 지식 자산을 이용해 취득한 지식을 재생산할 수 있다.</p>
<p>지식은 누구나 다가와 나눌수록 사회 속에서 더욱 커진다. 사회 구성원이라면 그 혜택을 기꺼이 누릴 수 있고,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나눔을 개방(Open)이라 하는데, 우리 사회가 지식 사회이면서도 경제 체제 사회이므로 무료(Free)도 아주 간과할 순 없다. 쌀수록 접근성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즉, 무료가 개방은 아니지만, 무료가 개방성에 도움을 준다.</p>
<p>아주 작은 사회 하나를 예로 들자면, 내가 벗 한 명을 불러내어 내 지식을 공유한다. 대가를 받고 지식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 수다 떨듯이 가볍게 맥주 한 잔 나누며 공유하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비용과 그가 느끼는 비용은 기껏해야 맥줏값 정도이지만, 나와 벗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내가 공유한 지식은 더욱 풍부해진다.</p>
<h3>사회총지식이 그 사회가 가진 지식 풍요로움을 나타낸다</h3>
<p>자본주의 경제 사회에서 GDP가 각 나라의 경제력을 나타내듯이, 지식 사회에서 사회총지식은 그 사회의 지식 경제력이라고 할 수 있는 지식 풍요로움을 나타낸다. 지식이 곧 경제 가치로 환원되는 오늘날에는 사회총지식 총합이 클수록 경제 가치로 환원할 수 있는 자원이 많다는 말이 된다. 가정이라는 사회, 회사라는 사회, 나라라는 사회 가를 것  없이 사람이 모여 함께 엮이며 살아가는 사회에서라면 지식이 그 사회를 덩치나 알맹이 모두 키운다.</p>
<p>사회 차원에서 지식 생산을 놀리는 방법은 지식을 나누는 것이다. 개방(Open)을 하여 폐쇄성이라는 비용을 낮추고, 경쟁, 돈, 계층이라는 값비싼 접근 비용 역시 낮추어야 한다. 작게는 내가 가진 지식을 널리 두루 공유하고, 크게는 사설 학원보다는 과외 자원 봉사 단체가 늘거나 도서관이 늘어야 한다.</p>
<p>지식을 독점하면 당장은 경제 가치로 바꿀 수 있는 자원이 많아 힘을 얻겠지만, 넓게 보면 그가 속한 사회에 흐르는 사회총지식이 줄기 때문에 사회가 약해져 지식을 독점한 그 자신도 점차 사그라질 것이다. 공유하면서 내 지식 자원도 늘리고, 사회총지식도 늘리는 것이다. 경제는 물가오름세(인플레이션) 위험이 있지만, 지식엔 그러한 위험이 없다.</p>
<p>사회총지식을 너무 어렵게, 넓게 볼 필요는 없다. 내가 속한 작은 사회에서부터 사회총지식을 알아 가면 된다. 그리고 사회총지식을 늘려야 하는 필요성과 이유를 깨닫고 실천하면 된다.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p></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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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필요하게 어려운 말을 쓰는 것은 폭력이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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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9 Oct 2008 04:35:10 +0000</pubDate>
		<dc:creator>Hannal</dc:creator>
				<category><![CDATA[생각한다]]></category>
		<category><![CDATA[쉬운말]]></category>
		<category><![CDATA[정보공유]]></category>
		<category><![CDATA[정보소외계층]]></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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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 어려운 말
한글을 만든 목적은 요즘 말로 간단히 말해서 정보를 널리 두루 공유하기 위함이다. 한글을 만들기 전엔 중국 글자인 한자를 썼는데, 한자는 먹고 살기 바쁜 대다수 사람들이 익히기에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한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양반층이 정보 대부분을 독점하여 권력을 누렸다. 한글은 며칠이면 익혀서 소리를 글로 받아적을 수 있을만큼 쉬운 글자였기에 당시 양반층은 한글을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h3>1. 어려운 말</h3>
<p>한글을 만든 목적은 요즘 말로 간단히 말해서 정보를 널리 두루 공유하기 위함이다. 한글을 만들기 전엔 중국 글자인 한자를 썼는데, 한자는 먹고 살기 바쁜 대다수 사람들이 익히기에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한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양반층이 정보 대부분을 독점하여 권력을 누렸다. 한글은 며칠이면 익혀서 소리를 글로 받아적을 수 있을만큼 쉬운 글자였기에 당시 양반층은 한글을 강하게 반대했고, 그 탓에 한글이 일으킬 수 있는 어마 어마한 가치는 오래도록 묻히고 만다.</p>
<p>한글을 쓰는 요즘은 어떨까. 한글 덕에 우리는 말을 아주 쉽고 빠르게 쓸 수 있지만, 불행하게도 글로 담을 말은 참 어렵다. 우리말 자체가 어려운 탓도 있지만, 쉽게 쓸 수 있는 말을 굳이 어렵게 쓰는 탓이 더 크다. 어려운 말에 너무 익숙해져서 쉬운 말을 쓰는 것을 더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을 지경이다. 몇 가지 살펴보자.</p>
<blockquote><p>만약에 사람들이, 사실은 선적인 일관성이나 변증법적인 양극성이라는 것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스템 속에서, 억지로 관습적인 시뮬라시옹을 가지고 뒤틀어놓은 영역 안에서, 아무 사건의 사이클 전체를 예견해 본다면, 이 행위나 사건은 모든 사람에게 득을 주었고 모든 방향으로 바람 통하듯이 통해 버렸기 때문에 사이클의 끝에 와서는, 이 행위에 대한 모든 임의로운 한정은 공중으로 날아가 버리고 그와 함께 모든 행위는 폐기되어 버린다.</p>
<p style="text-align: right">책, 시뮬라시옹, 47쪽 중에서</p>
</blockquote>
<p>저 한 문장은 지금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내 철학 개념이 얕은 탓도 있겠지만, 문장이 우리말과 매우 다른 꼴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저 책은 번역서이고 철학책이라서 작은 의역이 뜻을 크게 잘못 전달 할 수 있으니 저럴 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 문장은 어떠한가.</p>
<blockquote><p>인간의 영혼은, 그것이 자신 속의 동물적이고도 맹목적인 욕망을 이성적 사유와 분별의 힘에 의해 다스리고 지배할 때, 자신의 본래적 탁월함을 실현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의 모든 부분 모든 기능은, 그것들이 모두 이성적 분별의 힘에 의해 통제되고 조정될 때, 자신의 본래성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p>
<p style="text-align: right">책, 나르시스의 꿈, 40쪽 중에서</p>
</blockquote>
<p>번역서 같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이다.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영어 번역투 문장에다 지나치게 대명사를 써서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이런 문장은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일상 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내용은 아니니 넘어간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 문장은 어떠한가.</p>
<blockquote><p>범죄행위로 인한 사망ㆍ중장해 피해자가 가해자의 불명 또는 무자력인 관계로 범죄피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상받지 못하거나, 자기 또는 타인의 형사사건의 수사 또는 재판에 있어서 고소ㆍ고발 등 수사단서의 제공, 진술, 증언 또는 자료제출과 관련하여 피해자로 된 때 국가에서 피해자 또는 유족에게 일정한도의 구조금을 지급하는 제도</p>
<p style="text-align: right">사이버 경찰청, <a href="http://www.police.go.kr/infodata/if_victim_guide.jsp">범죄피해자 구조제도</a> 중에서</p>
</blockquote>
<p>문장이 쉽지 않고 낱말도 어려워서 글로 봐도 얼른 이해가 안되는데, 만약 저런 설명을 경찰서나 파출소에서 말로 듣는다면 더 알아듣기 힘들 것이다. 이쯤되면 어려운 말은 폭력이라고 칭할 수 있다. 정보(지식)를 이용한 폭력 말이다. 그나마 법조계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말을 쉽게 쓰는 노력을 기울여 <a href="http://sladmin.scourt.go.kr/sladmin/sosong/sosong_05/index.html">행정 소송 안내글</a> 경우처럼 법 관련 정보를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말 위주로 써서 제공하고 있다.</p>
<h3>2. 쉬운 영어 쓰기 운동</h3>
<p>영국에선 1979년부터 <a href="http://www.plainenglish.co.uk">쉬운 영어 쓰기 운동(Plain English Campaign)</a>을 벌이고 있다. 한 노인 부부가 사회보장제도인 난방비 신청 서류를 쓰지 못해 얼어죽은 일이 계기가 되었다. 공문서, 보험 및 금융, 법 관련 문서는 고약하다는 말이 나올만큼 어려운 표현이 가득해서 원성을 사고 있는데, 이런 문서에 있는 말을 일반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로 바꾸는 운동이다. <a href="http://www.plainenglish.co.uk/beforeandafter.htm">예를 들면</a>,</p>
<blockquote><p>If there are any points on which you require explanation or further particulars we shall be glad to furnish such additional details as may be required by telephone.<br />
만약 설명이나 세부사항에 대해 요구할 점이 있다면 전화를 통해 기꺼이 추가 세부사항을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p></blockquote>
<p>이런 문장을</p>
<blockquote><p>If you have any questions, please phone.<br />
여쭤보실 게 있다면 전화 주세요.
</p></blockquote>
<p>이렇게 쉽게 바꾸는 것이다.</p>
<p>이런 훌륭한 운동을 오랜 시간 해온 덕에 많은 이들이 그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이 운동에 동참하는 곳에는 크리스탈 표식을 달아주며 적극 장려하고 있다.</p>
<h3>3. 어려운 말 쓰기에 굴복 당하고 휩쓸리기</h3>
<p>어려운 말을 쓰는 이유 중 하나는 예의 때문이다. 고맙다고 하면 예의 없는 것 같아서 감사하다고 하는 식이다. 감사는 일본식 한자어인데, 고마움을 느낌이라는 뜻이다. 쉽지 않는 낱말인데 이제는 두루 쓰여서 쉬운 말이 되었고, 고맙다는 말보다 더 공손한 표현으로 쓰인다.</p>
<p>또 다른 이유는 효율성이라는 허울을 뒤집어 쓴 기득권이다. 우리말로 쓰기 어려운 표현이 있긴 하다. 그러나 상당 수는 우리말로 풀어쓰거나 대신 쓸 수 있다. 감자(減資)라는 말 대신 자본금 줄이기라고 써도 뜻을 전하는 데 문제가 없다. 감자라는 낱말을 쓰면 이 말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 뜻을 알아내기가 매우 어렵다.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 진입 장벽을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이다.</p>
<p>혹은 ~적이라는 표현으로 뜻을 불명확하게 나타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고의적으로”는 “일부러”, “대체적으로”는 “대체로” 쓸 수 있다. 이런 말은 그래도 쉽고 명확한 편이다. “가시적 증명”나 “문제적 장면” 같은 표현은 말도 어렵고 뜻도 명확하게 와닿지 않는다. “문제적 장면”이라는 것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인지, 문제를 일으킬 여지가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문제라고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인지 얼른 알기 어렵다. “가시적 증명”도 눈에 보이는 증명인지, 증명 결과가 눈에 보일만큼 진행됐다는 것인지 쉽게 알기 어렵다. 이런 표현들은 말을 짧게 줄여주지만 뜻을 불명확하게 하여 어렵게 느껴진다.</p>
<p>우리말이 있는데도 다른나랏말을 쓰는 경우도 있다. 이유는 다양한데 게으름이나 허영심 때문인 경우가 흔하다. 선이나 줄이라는 우리말을 쓸 수 있는 상황에서도 굳이 라인(line)이라고, 상자라고 써도 되는데 박스(box)라고, 전화기나 휴대전화기라는 말 대신 휴대폰이라고 말을 쓰는 것이다. 물론 다른나랏말이므로 우리말에 꼭 들어맞는 말로 쓰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가 아니라면 그 상황에 맞는 우리말을 쓰면 되는데, 라인, 박스, 폰이라는 말이 지나치게 많이 쓰이고 있다. 흔히 쓰이는 다른나랏말이라서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말이 어려움을 일으킬 수 있다.</p>
<h3>4. 쉬운 말 쓰기</h3>
<p>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어떤 시트콤에 나온 장면이 기억난다. 일제강점기를 보낸 할아버지가 툭하면 며느리나 손자가 알아들을 수 없게 일본말로 구시렁거린다. 며느리가 있는 자리에서 친구와 일본말로 흉을 보기도 한다. 극 특성상 우스운 상황으로 풀어냈지만, 말로 휘두르는 폭력성 때문에 보는 내내 불편했다.</p>
<p>이미 우리는 다른나랏말로 세대나 계층 사이에서 소통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에 이르렀다. 그뿐인가. 쉬운 말을 쓰면 알아들을 수 있는데 굳이 어려운 말을 써서 알아듣기 어렵게 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소통을 가로막고, 더 나아가 정보 공유를 방해하는 폭력이다. <strong>어려운 말 쓰기라는 폭력은 작게는 소통 방해를 하고, 자신이 누려야 할 권리를 포기하거나 두려움을 갖게 해 도망치게 한다</strong>. 때로는 어려운 말을 힘겨워 하는 이들을 죽이기도 한다. 말을 쉽게 쓰지 않는 이들과 어려운 말이 이 사회를 채우고, 이 사회는 그러한 말과 정보를 어려워하는 이들을 정보 소외 계층으로 만든다.</p>
<p>아직 이 사회에서 떠다니는 어려운 말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말은 빠르게 어려워지고 있고, 그 빠르기를 따라잡지 못하는 순간부터 자신도 어려운 말이 휘두르는 폭력에 희생 당한다. 쉬운 말 쓰기는 자신을 지키는 것이고, 더 나아가 내 이웃, 사회를 지키는 것이다. 또, 정보를 빠르고 두루 공유할 수 있어 지금보다 더 큰 집단 지성을 이룰 수 있으며, 정보에 다가가는 것이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게 된다.</p>
<p>익숙하지 않거나 어려워도 쉬운 말을 쓰도록 노력하고 실천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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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내가 보수주의자가 된 까닭</title>
		<link>http://www.hannal.net/think/why_i_am_a_conservative/</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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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9 Oct 2008 01:04:13 +0000</pubDate>
		<dc:creator>Hannal</dc:creator>
				<category><![CDATA[생각 던지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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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칭하는 수구주의자나 기득권자들이 온갖 허튼짓을 하는 탓에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혹은 깐깐한 어른들 사이에서 젊은 내가 보수주의자라고 말을 하면 다소 구박을 받곤 한다. 게다가 실용주의자라는 말까지 하면 이명박 대통령 지지자로 오인을 받을 수도 있다. 더구나 일부 사람들이 “한나라당”을 “한날당”이라고 부르는 탓에 내 필명인 “한날”로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실은 꽤 오래도록 진보주의자였고, 지금도 그런 성향을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칭하는 수구주의자나 기득권자들이 온갖 허튼짓을 하는 탓에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혹은 깐깐한 어른들 사이에서 젊은 내가 보수주의자라고 말을 하면 다소 구박을 받곤 한다. 게다가 실용주의자라는 말까지 하면 이명박 대통령 지지자로 오인을 받을 수도 있다. 더구나 일부 사람들이 “한나라당”을 “한날당”이라고 부르는 탓에 내 필명인 “한날”로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p>
<p>실은 꽤 오래도록 진보주의자였고, 지금도 그런 성향을 꽤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갈수록 진보성보다는 보수성이 강해지고 있으며, 심지어 진보에 의문을 품고 있다. 진보에 의문을 품으며 서서히 보수 쪽으로 머리가 향하는 이유는 이러 저러한 것들을 보고 겪으며 머리를 채우고 이들이 어우러져 개똥철학이나마 갖춰진 데 있다.</p>
<p>모순되지 않은가? 앎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현 체제를 유지하려 애쓰는, 머리에 똥만 가득 찬 이들이 보수주의자들인데, 소신이나 철학이 생길수록 보수성이 짙어지니 말이다. 이는 기득권자나 자본가, 권력자들이 사회에 두루 뿌려 놓은 거짓말에 기만 당하고 사기를 당하기 때문에 모순되어 보이는 것뿐이다. 저들은 변화 빠르기나 폭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이익일 뿐이다. 반면, 보수주의자는 느릴 뿐, 기득권 주장과는 별 관계없다.</p>
<p>물음 하나를 머리 속에 크게 써보자.</p>
<p style="text-align:center;"><strong>진보가 정말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가?</strong></p>
<p>정치 영역에서 뜻하는 진보와 구분을 해야 한다. 여기서 진보란 사전에 나오는 뜻, 그러니까</p>
<blockquote><p>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 높아짐.<br />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함.
</p></blockquote>
<p>이런 뜻이 있는 낱말을 뜻하며 정치 쪽에서 뜻하는 진보는 뒤에 차츰 나온다. 어쨌든 나는 사회 변화와 발전이 부담스러워서 도무지 정이 가질 않는다. 저 진보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는 확신도 들지 않는다.</p>
<p>이익 극대화를 위해 효율을 높이려는 혁신은 해당 분야나 사회 측면에서 진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진보는 대다수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고 장담할 순 없다. 기계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점차 일자리를 잃고 있다. 즉, 효율을 높이려고 대체로 느리고 불확실성을 가진 개체인 사람을 몰아내는 것이다. 발전이 불러온 효율이란 그런 것이다. 이러한 진보는 정치/사회 진보주의자가 아니라 기술 진보주의자나 혁신자가 이끌어 내며, 이는 진보주의를 거부하는 자본가에 의해 경제계에 도입되고 극대화된다.</p>
<p>이 역시 사기극이며 말장난이다. 진보주의자들이 좇는 진보란 단순히 기술 진보만을 뜻하지 않는다. 다양한 발전과 변화를 통해 우리의 삶 자체가 진보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기득권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보존하거나 늘려줄 경제 체계에 효율을 극대화하여 기술이나 사회 진보를 도구로 이용한다. 즉, 이러한 진보는 시작이나 의도와는 달리 그 운용이나 결과는 기득권 발전 장치로 쓰여 넝마가 되고 만다.</p>
<p>진보가 사람을 행복하게 하려면 삶의 진보로써 작동될 수 있는 사회 환경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a href="http://www.hannal.net/think/the_perspectives_of_the_social/">현 사회는 경제 활동을 우선시하고 있다</a>. 단도직입 하자면 경제에 개개인의 삶, 그리고 그 삶이 모인 사회가 지배받고 있으며, 이렇게 편향된 사회 환경에서 진보 역시 삐뚤어지거나 특정 진보만이 가치를 인정받는다. 진보가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모순된 말이 허용되는 것이 현 사회이다.</p>
<p>돈이라는 경제 수단이 생긴 이래 경제 체계에서 통용되는 모든 가치는 돈이라는 매개체로 대표되고 있다. 뜻을 가리키지만, 실제 그 뜻 자체를 품지 못하는 기호처럼, 실제 가치를 가지지 못하지만 그 실제 가치를 대표해서 현 경제 체계에서 거래되는 것은 돈이다. 대다수 사람이 누리는 삶의 가치는 경제 활동 개체(상품, 서비스 등)를 통해 얻는 2차 만족감에서 이뤄지며, 이러한 개체는 돈으로 대표된다. 아니, 대표성을 넘어서 돈으로 결정 지어진다.</p>
<p>결국, <strong>진보도 경제에 통제되어 진보에 따른 참된 결과마저도 경제 수단으로 발이 묶이고 만다</strong>. 그 대가는 경제 효율 극대화라는 찬사와 함께 체제(system)는 진보하고, 그 체제를 이루는 부품들인 사람들은 더 나은 부품, 즉 진보의 결과물에 대체되어 결국 불행해지고 만다.</p>
<p>대체로 IT 얘기를 많이 한 블로그이니 Open API를 예로 들어보자. Open API는 대단히 진보된 애플리케이션 통신 규약이다. 폐쇄에서 개방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힘이 약한 자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렸으며, 이용자들 역시 진보를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API는 플랫폼에 종속되어 있어 플랫폼 소유자가 곧 API 역시 소유하는데, 이를 개방하여 누구나(?) 그 플랫폼에 접근할 수 있게 했으니 얼마나 큰 변화인가.</p>
<p>힘이 센 이들, 즉 기득권자나 독점자 관점에서 보면 느낌은 사뭇 다르다. 얼핏 보면 플랫폼 소유자가 많은 부분을 포기하거나 심지어 손해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는 더 큰 이득을 보는 것이다. 양에서 질로, 이제는 질을 넘어서 선점이 중요한 요즘 세상에 혼자서 그 무거운 플랫폼을 등에 업고 다양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것은 무모하다. 질은 몰라도 양이나 속도에서는 폐쇄 플랫폼이 개방 플랫폼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플랫폼 소유자로서는 플랫폼을 Open API로 개방하는 것은 폐쇄형 플랫폼에서 낼 수 없는 효율을 내기 위한 진보이다.</p>
<p>해당 플랫폼을 소유한 기업이나 단체에서 API 개발자로 일하던 이에겐 이런 변화가 재앙이 될 수 있다. 해당 분야나 산업군에선 분명히 높은 효율을 보장하는 진보이겠지만, 그러한 기술과 철학 진보가 그 일을 하던 개인에겐 불행이 될 수 있다. 이들은 여가를 쪼개어 자신을 계발하여 변화라는 괴물을 피하여 살아남거나, 혹은 조직에서 나와 바깥에서 Open API를 활용한 자영업자가 되어야 한다. 물론 같은 직무로 다른 기업이나 조직에 갈 수 있지만, 산업군에 휘몰아치는 변화라는 파도를 완전히 피하기란 쉽지 않다.</p>
<p>굉장히 모순된 상황이다. 조직체는 그 성향상 보수성이 강한데, 진보 때문에 보수성이 어느 정도 보장하던 안정감은 흔들리고, 그 흔들림에 털리듯 튕겨 나온 이들 중 상당수는 불안정 속에서 플랫폼 소유자와 경쟁한다.</p>
<p>물론, Open API가 단순히 효율을 높인 것은 아니며, 이전에 없던 기회와 가치를 개방하여 넓혔다는 점 역시 인정한다. 위 예는 진보가 기득권자나 자본가들에게 어떻게 무기화 되는지를 다소 편향된 관점에서 든 것일 뿐이다. 굉장히 진보성이 강한 오픈 소스 프로젝트(Open Source Project)들이 사람과 사회에 미친 좋은 진보를 인정하고 사랑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이로 말미암아 자신의 능력이 낼 수 있는 가치가 평가절하되거나 심지어 일자리를 잃는 힘 약한 다수를 외면하긴 어렵다.</p>
<p>이렇게 볼 때, 진보는 진보로써 사람과 삶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고, 힘센 권력자에게 무기가 되는 흐름과 모습을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진보주의에 담긴 철학이 경제 가치를 늘리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삶을 더 따뜻하고 뜻깊게 할 방향을 가리킬 수 있는데, 정작 현실에선 나를 현혹하고 기만하며 심지어 내 목까지 겨누는 도구나 수단이 되고 있다. 마치 TV나 언론 매체들이 내게 그러하듯 진보 역시 그렇게 악용되는 것이다.</p>
<p>처음 진보주의를 접하고 그 매력에 빠졌다가 골수와 심장까지 얼려버리는 현실이라는 냉수 한 잔에 정신을 차렸다. 진보주의자는 진보를 철학과 행동, 실천으로 바라본다면, 기득권자나 자본가들은 진보를 무기로 쥐어 휘두르며 진보주의자 역시 그 무기에 위협을 받는다. 심지어 진보주의자마저 무기처럼 대하여 진보는 더욱더 왜곡되어 사생아가 되거나 괴물이 되어 태어나 많은 사람을 괴롭힌다.</p>
<p>결국,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불편함은 기꺼이 감당하며, 만족을 한다면 굳이 지금보다 더 진보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즉 세상 흐름을 부담스러워 하는 보수주의자가 되었다. 혹자는 패배주의자, 혹은 도망자라고 비난을 할지 모르지만, 난 아직 졌거나 도망친 적이 없다. 또한, 큰 변화나 빠른 변화를 부담스러워 할 뿐, 틀을 유지하며 더 나은 가치를 좇는 혁신을 모색하고 있다. 가짜가 아닌 진짜를 찾아 끊임없이 공부하고 궁리하여 나 자신을 무기가 된 진보로부터 지켜내려 한다. 이러한 사회와 이러한 결심으로 나 자신을 보수주의자라 부르게 되었고, 당분간은 계속 그렇게 부를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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