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방 ] 꼬리표를 달고 있는 글들

사회총지식 (Gross Societal Knowledge)

사회

사회는 여러 종류가 있다. 학교, 기업, 작은 모임, 비공개 모임, 경제 사회, 삽질 사회, 사기 사회, 비상식 사회, 유치한 사회. 공통점은 여러 사람이 모였다는 점인데, 사회란 공동생활을 하는 사람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피터 드러커는 오늘날 사회는 지식 사회이며, 지식 사회를 구성하는 지식 노동자가 성과를 올리는 데 필요한 연속성, 계속성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조직뿐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사회가 조직사회가 되는 것이라 했다.

조직과 사회는 다른 말이다. 이 구분 역시 피터 드러커의 말에서 따오자면, 조직은 공통의 목적을 위해 일하는 전문가로 구성된 인적집단이며, 조직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과제를 담당하는 사회를 위한 기관이다. 즉, 사회 속에 조직이 형성되는 것이다.

국내총생산

국내총생산(GDP : Gross Domestic Product)이란 나라 안에서 이뤄지는 생산 총합이다. 이 수치가 클수록 그 나라 경제력이 높다고 본다. 물론, 몇 가지 한계점이 있지만, 범세계 경제 체제가 자본주의를 따르므로 대체로 GDP가 나라 경제력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GDP를 올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생산한 생산물로 경제 활동을 하면 된다. 다소 무식하게 추상화해서 비유를 들면, 쌀 농사를 지어 혼자 먹는다면 경제 활동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GDP로 봤을 때 0원이다. 그러나 이 쌀을 누군가에게 판 뒤 그 돈으로 보리를 사다 먹으면, 심지어 자신이 판 쌀을 되사도 이는 경제 활동으로 측정되어 GDP 수치는 오른다.

참 불합리하고 모순된 것 같지만, 경제 사회(경제 체제)에서 생산물을 사회에 유통하여 현금이든 개인 만족감이든 가치를 일으키는 현상은 인정할 만하다. 그러므로 GDP 총액으로 각 나라가 가난한지 부자인지를 따지기보다는, 가치 생산 활동과 거래 활동이 일어나는 정도가 얼마만큼 되는지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을 참고하는 것이 낫다. 좋고 싫고, 옳고 그르고를 가를 것 없다.

개개인이 가진 어떤 가치, 위 비유로 보면 생산물을 다른 이가 가진 것과 교환을 할 때, 각 각이 가진 가치 크기를 제대로 측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돈이라는 도구를 만들어서 거래를 한다. 자신의 생산물로 돈을 산 뒤 이 돈을 팔아 다른 이의 생산물을 산다. 참 쉬운 개념이며 흐름이다.

사회총지식 (Gross Societal Knowledge)

앞선 단락에서 낱말 몇 개를 바꿔보자. 경제 사회는 지식 사회, 생산물(가치)은 지식으로 바꾸어서 경제 흐름을 보면, 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지식 총합을 사회총지식(GSK : Gross Societal Knowledge)이라고 부를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 사회에서 생산물을 거래하는 경제 활동이 GDP를 키우듯, 지식 사회에서 지식을 거래하는 활동이 사회총지식(GSK)를 키운다. 꽉 움켜쥐고 혼자만 알고 있다면 그 지식이 사회에서 가치로 환원되는 값은 0에 가깝다. 그 사람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나 관계도가 10이라면 그 지식은 0에서 10 사이 정도 되는 사회 가치일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얼마라도 받고 지식을 공유한다면 그 지식은 비로소 10 이상이 될 수 있다. 여전히 10 미만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10 이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경제 거래 개체는 거래값이 0에 가까워질수록 경제 총합이 함께 떨어지는 경향이 강하다. 간단히 말해서 한 사람이 쌀 1kg을 각각 100명에게 100원에 팔면 그 사회의 총생산은 10,000원이 되고, 50원에 팔면 5,000원이 되는 것이다.

사람 수  X 개체 거래 값 = 가치 총합

이에 반해 지식 거래 개체는 지식 거래 값이 0에 가까워질수록 지식 총합이 늘어난다. 지식 하나를 100명에게 100원에 팔면 그 사회의 지식 총생산은 10,000원이 되고, 50원에 팔면 20,000원이 된다. 단, 지식을 팔면 그 지식을 고스란히 전수받는다는 전제를 따른다.

사람 수 * (지식개체 값 / 지식개체 거래값) = 가치 총합

즉, 지식은 공유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낮출수록 그 사회는 물론 지식 자체 가치도 오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식은 거래해서 취득하는 목표와 목적이라기보다는 수단이나 도구에 가깝다. 제조 활동으로 보면 원료(resource)이다. 개개인은 가진 지식 자산을 이용해 취득한 지식을 재생산할 수 있다.

지식은 누구나 다가와 나눌수록 사회 속에서 더욱 커진다. 사회 구성원이라면 그 혜택을 기꺼이 누릴 수 있고,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나눔을 개방(Open)이라 하는데, 우리 사회가 지식 사회이면서도 경제 체제 사회이므로 무료(Free)도 아주 간과할 순 없다. 쌀수록 접근성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즉, 무료가 개방은 아니지만, 무료가 개방성에 도움을 준다.

아주 작은 사회 하나를 예로 들자면, 내가 벗 한 명을 불러내어 내 지식을 공유한다. 대가를 받고 지식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 수다 떨듯이 가볍게 맥주 한 잔 나누며 공유하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비용과 그가 느끼는 비용은 기껏해야 맥줏값 정도이지만, 나와 벗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내가 공유한 지식은 더욱 풍부해진다.

사회총지식이 그 사회가 가진 지식 풍요로움을 나타낸다

자본주의 경제 사회에서 GDP가 각 나라의 경제력을 나타내듯이, 지식 사회에서 사회총지식은 그 사회의 지식 경제력이라고 할 수 있는 지식 풍요로움을 나타낸다. 지식이 곧 경제 가치로 환원되는 오늘날에는 사회총지식 총합이 클수록 경제 가치로 환원할 수 있는 자원이 많다는 말이 된다. 가정이라는 사회, 회사라는 사회, 나라라는 사회 가를 것  없이 사람이 모여 함께 엮이며 살아가는 사회에서라면 지식이 그 사회를 덩치나 알맹이 모두 키운다.

사회 차원에서 지식 생산을 놀리는 방법은 지식을 나누는 것이다. 개방(Open)을 하여 폐쇄성이라는 비용을 낮추고, 경쟁, 돈, 계층이라는 값비싼 접근 비용 역시 낮추어야 한다. 작게는 내가 가진 지식을 널리 두루 공유하고, 크게는 사설 학원보다는 과외 자원 봉사 단체가 늘거나 도서관이 늘어야 한다.

지식을 독점하면 당장은 경제 가치로 바꿀 수 있는 자원이 많아 힘을 얻겠지만, 넓게 보면 그가 속한 사회에 흐르는 사회총지식이 줄기 때문에 사회가 약해져 지식을 독점한 그 자신도 점차 사그라질 것이다. 공유하면서 내 지식 자원도 늘리고, 사회총지식도 늘리는 것이다. 경제는 물가오름세(인플레이션) 위험이 있지만, 지식엔 그러한 위험이 없다.

사회총지식을 너무 어렵게, 넓게 볼 필요는 없다. 내가 속한 작은 사회에서부터 사회총지식을 알아 가면 된다. 그리고 사회총지식을 늘려야 하는 필요성과 이유를 깨닫고 실천하면 된다.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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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아이폰과 매트릭스

1. 들어가며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는 두 번 각성한다. 첫 번째 각성은 매트릭스 속에서 매트릭스 통제(control)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두 번째 각성은 매트릭스 밖에서 매트릭스를 보고 건드릴 수 있는 것이다. 매트릭스 내용을 해석하는 사람은 많고 해석도 다양한데, 이를 휴대전화기와 아이폰에 연결해서 생각해봤다. 가벼운 마음으로 썼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즐겨주시라.

2. 각성하기 전. 1세대 휴대전화기

휴대전화기는 정말 많은 발전을 했다. 초기엔 전화기를 휴대한다는 쓰임새에 걸맞는 기능에 충실했다. 이러 이러한 멋진 기능이 많아서 좋다가 아니라 전화 잘 걸리고 튼튼해서 좋다는 식이다. 현대에서(현 팬텍) 나오던 걸리버는 “걸리면 걸리는 걸리버”, 삼성에선 어디에서나 걸린다고 “애니콜”이었으며, LG 사이언(CION (지금은 CYON이다)) 광고에서 송윤아는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응~ 잘 들려”라며 여유롭게 전화 통화를 마친 뒤 “날 방해할 수 없어”라는 대사를 읊었다.

휴대전화기 제조사 뿐 아니라 휴대전화 망사업자도 마찬가지였다. SKT은 제때 제대로 전화 걸리며 통화 품질 좋다며 Speed 011을 내세웠고, 신세기 통신은 “자장면 시키신 분~!” 광고에서 017은 어디에서나 전화 잘 걸린다고 홍보를 했다.

즉, 99년까지 휴대전화기에게 가장 큰 덕목은 전화 걸면 걸리고 잘 들리고 튼튼한 것이었다. 자, 여기까지 1세대.

3. 쓰임새에서 벗어나다. 첫 번째 각성.

다음 세대는(2세대) 네오가 첫 번째 각성한 것과 견줄 수 있다. 기존엔 휴대전화기는 “전화기”에 “휴대성”이 붙은 것이었다면, 슬슬 전화하는 것과 직접 관계 없는 기능들이 전화기에 붙기 시작한 것이다. 2000~2001년부터 휴대전화기는 휴대“전화기”에서 “휴대”전화기로 변해갔다. 늘 갖고 다니며 전화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오락도 할 수 있고, 전화가 왔을 때 소리도 좀 더 예쁘게 바꿀 수 있게 되었다. 집전화에서 전화 오는 소리가 아름다워봐야 얼마나 가치 있을까? 어차피 듣는 사람이야 가족일텐데. 하지만, 늘 휴대하고 다니는 휴대전화기는 남들도 대하게 된다.

이렇게 “전화를 걸고 전화를 받는” 쓰임새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쓰임새라는 틀, 굴레에서 말이다. 전화를 주고 받는 쓰임새(틀, 굴레)에서 벗어나 있는 독립된 여러 기능들. 이 첫 번째 각성은 약 5년을 끌고 갔다. 새로운 각성이 일어나지 않고 첫 번째 각성을 계속 발전시켜 온 것이다. 휴대전화기로 사진을 찍고 음악을 듣고 TV(dmb)를 보더라도 이는 첫 번째 각성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4. 전화기에서 벗어나다. 두 번째 각성.

두 번째 각성은 2005년에 슬슬 보이더니 2006년부터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올 해 들어 사람들에게 들이대기 시작했다. 휴대전화기가 똑똑해졌다고 해서 스마트 폰(smart phone)이라고 하더라. 두 번째 각성을 했다는 휴대전화기들이 첫 번째 각성한 휴대전화기들과 뭐가 다른걸까? 얘네들도 예전 것들과 마찬가지로 기능만 나아진 것 아닐까?

잠시 네오의 두 번째 각성을 떠올려 보자. 첫 번째 각성에서 네오는 매트릭스라는 통제에서 벗어났다. 매트릭스 안에 연결했을 때 말이다. 두 번째 각성은 굳이 매트릭스에 접속하지 않고도 기계 시스템 위에서 돌아가는 것들을 건드릴 수 있게 되었다. 현실 세계에서도 기계들을 폭파시킨 바로 그 모습이다.
매트릭스에 접속하지 않고도 매트릭스 속 네오처럼 힘을 발휘한다. 이게 휴대전화기와 무슨 상관이 있냐하면, 바로 무선이다. 네오는 두 번째 각성을 통해 유선에서 벗어나 무선으로 시스템에 접근하여 첫 번째 각성에서 이룬 것들을 행할 수 있게 된다.

휴대전화기는 당연히 무선이다. 그럼 이미 첫 번째 각성에 갈 것도 없이 1세대에서 이미 두 번째 각성을 이룬 것일까?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두 번째 각성을 통해 첫 번째 각성에서 이룬 것들을 행하고, 그 행동이 유의미해야 한다. 그래야 두 번째 각성, 즉 3세대를 이룬 것이다.

첫 번째 각성을 통해 우린 휴대전화기를 이용하여 사진도 찍고 음악도 듣는다. 적바림(memo)을 해두고, 좀 특이한 경우는 휴대전화기를 PDA처럼 쓰기도 한다. 이런 행위들과 자료들은 휴대전화기 속에 갇혀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러한 자료를 만들고 관리하는 휴대전화기 속 도구들(Application)은 휴대전화기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화를 하는 방법이 무선일 뿐, 전화기 속 알맹이들은 유선도 무선도 타지 못한 채 전화기 속에 갇혀 있었다.

Web 2.0이니 뭐니 하면서 눈으로 드러나고 겪고 있는 문화는 열린 공간과 참여이다. 그런 문화를 이끄는 기술들은 참 많은데, 그 중에서 내가 이 글에서 다루려는 것은 위젯(widget)이다. 작은 부품이나 장치를 뜻하는 낱말인 위젯은 그 이름 그대로 몇 가지 작지만 명확한 목적을 가진 도구를 뜻한다. 날씨 위젯, 지도 위젯 등 다양하기도 하다. 이런 위젯은 개념으로 봤을 때 “어떤 목적성을 가진 작은 무른모(Application)”이고, 핵심은 “개인화와 네트워크를 통한 독립”이다.

서울 지도를 보려고 서울 지도 정보를 모두 내가 보유할 필요가 없이, 서울 지도 정보를 가지고 있는 어느 곳에 접속해서 해당 정보를 가져와 보면 참 효율 있지 않을까? 이걸 되게 하는 접근과 소통 방법이나 수단이 바로 Open API이다. 이런 Open API를 써서 바깥에서 작지만 뚜렷한 목적성을 갖고 정보를 가져오는 배달부나 비서 역할을 하는 것이 위젯이다. 지도를 보려고 지도 서비스를 하는 곳에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내 컴퓨터나 무선 장치에서 편하게 가져와 보는 것이다.

자, 이 위젯의 개념만 보면 첫 번째 각성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위젯의 핵심을 보면 두 번째 각성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 휴대전화기 속에 있는 날씨 보기나 동영상 보기 기능들이(작은 무른모) 휴대전화기라는 틀과 굴레에서 벗어나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통신하고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예전에도 이런 건 가능했다. 근데 왜 이제 와서 새삼 대단한 신 기술인 것 마냥 얘기를 하는 것이냐하면, 예전엔 휴대전화기 무선 인터넷이 무척 느렸고 요즘 것들은 빠르기 때문이다. 아주 느렸기 때문에 글자 몇 개 디리릭 보내는 SMS(단문 전송 서비스)보다 용량이 훨씬 큰 동영상이나 고화질 사진을 주고 받기 아주 짜증스러웠다. 동영상이나 사진을 네트워크로 전송 받아 보기 힘드니 이용하지 않을 수 밖에 없고, 이용하지 않는 기술은 문화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5. 아이폰과 두 번째 각성

휴대전화기가 두 번째 각성을 하여 3세대에 이르렀다고 치자. “3세대”라는 낱말을 써서 혼란이 있을 수 있는데, 내가 여기서 쓰고 있는 “3세대”는 두 번째 각성을 뜻하는 것이며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규격인 3세대(3g)와는 다른 뜻으로 쓰고 있는 말이다. 어쨌건, 휴대전화기가 두 번째 각성을 했다고 치고, 이것이 아이폰과 무슨 관계가 있어서 이렇게 길게 떠들었는지를 밝히며 이야기를 마무리 할 때가 됐다.

아이폰 UI를 유심히 보면 여러 기능들이 갈래로 묶여 있지 않고 책상에 흩뿌려 놓은 것처럼 낱개로 나와 있다. 각 기능들이 정해진 목적을 행하는 작은 도구들이고, 이것이 위젯이라면 아이폰 UI는 위젯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 아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Photo라는 작은 덩어리를 꾹 누르면 사진 관련 도구가 짠 뜨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폰의 핵심은 이런 위젯들을 인터넷 망에 접속해서 쓸 수 있고, 이런 위젯들을 내장된 웹브라우저를 이용하여 편리하게 내려 받고 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간 여러 기사나 사용기를 보며 추측했고 실제로 아이폰을 만져보며 추측이 맞구나 생각했던 점이 있다. 아이폰은 전화기로써 참 불편하여 휴대전화기 쓰임새로는 절대 사지 않을 확고한 의지가 생긴다. 생각보다 무겁고 생각 외로 불편하다.

그런데, 아이폰에 위젯처럼 들어가 있는 여러 무른모가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움직인다는 생각을 하면 무척 두근거린다. 구글 지도, gmail, 구글 캘린더와 iCal을 네트워크로 실시간 연동을 하며 언제 어디서든지 접근하고, Youtube에 연결되어 동영상을 TV처럼 볼 수 있는 Rimo 같은 게 위젯 형태로 나와 그 아름다운 아이폰 UI에 붙는다면 정말 아름다울 것이다. 아, 물론 이렇게 갖고 노는 것은 전화기 쓰임새는 아니다.

phone 이라는 대중에게 무난하고 쉬운 이름을 붙인 제품이긴 하지만, 아이폰으로 갖고 놀 수 있는 핵심은 바로 두 번째 각성 사항이다. 여지껏 두 번째 각성을 노린 여러 기종들이 나왔지만 그런 문화를 만들지 못하거나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슬쩍 사라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애플은 iTunes라는 다목적 매체(multimedia) 가게도 운영하고 있고, 구글과 손 잡아 구글에서 제공하는 멋진 서비스들도 쓸 수 있게 하고 있다. 거기에다 해킹을 하면 애플에서 정식 지원하지 않는 것들도 즐길 수 있다(물론 나쁜 짓이다^^).

예전에 두 번째 각성을 도전했다가 실패한 네오들과는 달리 이번 네오(아이폰)는 두 번째 각성을 제대로 해서 두 번째 각성 이후 세상을 열어갈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 보인다. 비록 휴대전화기로 쓰기엔 짜증스럽지만, 전화기라 인식하지 않고 전화 기능도 있는 휴대 위젯 실행기라 생각하면 참 멋지고 탐나는 제품이다. 왠지 아이폰이라면 두 번째 각성을 성공하여 그 이후 세상도 이끌어 가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그나저나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는 숭고한 희생을 하여 시온을 해방한다. 서로를 파괴하려는 두 세력을 파괴가 아니라 공존이라는 다른 답을 내밀고 합의하게끔 이끌어 내었고, 그 대가로 자신을 희생한다. 아이폰은 어떻게 될까? 역대 네오들보다는 좀 더 좋은 환경에 있긴 한데, 정말 기대대로 멋지게 두 번째 각성 이후 세계를 이끌 것인가, 아니면 자신은 희생하고 다른 이들이 평화를 맛보게 될 것인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니어서 아이폰 역시 다른 네오들과 비슷해서 그냥 그렇게 서서히 죽을 것인가. 현재 일어나는 현상만 보면 애플 특유라고 할 수 있는 애플식 문화 만들기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아직 미미하다. 참 흥미롭고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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