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 꼬리표를 달고 있는 글들

친절과 편의

당연한 얘기인데, 친절과 편의는 완전히 다르며 꼭 함께 다니지 않는다. 내가 친절하다고 상대방이 꼭 편의를 느끼는 것이 아니며, 편의를 제공한다고 꼭 친절하다고 느끼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백화점 입구에서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안내자의 친절을 보며 난 불편함을 느끼며, 여러 가지 물건을 쉽고 편하게 찾아 살 수 있는 편의는 있지만 매장 직원과 벽을 쌓듯 구분 지은 편의점의 매장 구성은 직원에게 물건을 찾아달라는 말을 꺼내기 부담스럽게 만드는 불친절이다.

심지어 같은 상황인데도 어떤 목적으로 접근했는지에 따라 친절과 편의가 갈리기도 한다. 이렇게 다가가면 친절하긴 한데 불편하고, 저렇게 다가가면 편하긴 한데 불친절한 묘한 상황이다.

친절하고 편의를 함께 보일 수 있다면 더없이 좋지만 대체로 둘 중 하나를 잡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많은 서비스(Service) 업자는 친절과 편의 중 어느 하나만 갖췄거나 둘 다 갖추지 못하고 있다.

물론, 친절과 편의을 함께 받을 수 없는 건 아니다. 예를 들면, 어머니의 사랑은 둘 다 없는 듯 하지만 실은 아주 진하게 둘 다 녹아 들어있다. 어머니의 사랑이 서비스가 아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예전에도 서비스를 개인화하여 각 사람에게 제공해왔다. 요즘엔 더 널리 개인화 기능을 제공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런데, 개인화를 받는다고 꼭 친절함을 베푼다거나 편의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니다. 친절과 편의 사이에서 헤매다 길을 잃듯이 외면을 받을 위험이 있는 것이다. 무엇을 제공하는 걸로 끝나고, 내가 개인화 기능을 써야 하며 어떻게 써야 써야 하는지 알아볼 수 있는지는 제공하지 않을수록 이런 위험은 더 커진다. 취향대로 더 잘 찾아서 즐길 수 있게 하려고 제공하는 개인화 기능이 북쪽을 가르키지 않는 나침반이 되어 길을 잃게 하는 것이다.

잘 만들고 이용자를 잘 이끌어 주면 해결되는 말장난 같은 문제이자 위험일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비스 제공자는 자신이 만들어 제공하는 개인화 기능이 친절이나 편의를 이미 갖고 있다고 미리 마음을 먹지 않아야 한다. 이미 친절과 편의가 있는데 왜 불친절하다거나 편의성이 떨어진다는 불평을 하는지 이유를 찾는 것보다, 지금 친절과 편의가 없으니 사람들이 바라는 친절과 편의를 찾는 것이 더 빠르고 유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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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자음말을 반대한다.

나는 자음말을 반대한다. 나는 소리말(의성어)이나 흉내말(의태어)을 자음말로 나타내는 것을 더욱 반대한다. 자음말이란 자음만으로 말의 뜻을 쓰는 줄임말 중 하나이다. 예로, ㅎㅎ나 ㅋㅋ, ㅇㅇ 등을 들 수 있다.

자음말은 쓰임새 특성상 대체로 소리말인 경우가 많다. 흉내말이나 뜻말을 자음만으로 본래 뜻을 전달하는데는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뒤뚱 뒤뚱’이라는 흉내말을 ㄷㄸㄷㄸ이라고 적었을 때, 이것이 대체 무슨 말이고 어떤 의도로 적었는지 알 수 없다. 두루 ㄷㄸㄷㄸ를 뒤뚱 뒤뚱으로 알아듣자는 약속이 이뤄지기 전엔 알기 어렵다. 마찬가지 이유로, ㅇㅁㄴ이라는 자음말이 ‘어머나’하는 감탄말인지 ‘어머니’라는 낱말인지 알기 어렵다.
소리말은 흉내말 등과 비교하면 좀 더 쉽다. 사람들이 꽤 흔히 쓰는 ㅎㅎ라는 말이나 ㅋㄷㅋㄷ이라는 말을 썼을 때 대체로 쉽게 웃는 소리를 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뜻말은 말 자체가 가진 뜻 때문에 자음말로 줄이기 어렵고, 흉내말은 흉내 대상을 가리켜 써야 하는 제약이 있지만, 소리말은 앞뒤 말에 의존하는 정도가 적은 감탄말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ㅎㅎ라는 자음말을 봤을 때 ‘하하’인지 ‘흑흑’인지 쉽게 구분하긴 어렵지만, 두루 쓰이는 쓰임새가 웃는 소리이고 이때문에 ‘흑흑’이라는 쓰임새로 ㅎㅎ를 썼는지는 앞뒤 말을 보면 된다.

자음말로 많이 줄여 쓰는 소리말을 잠시 살펴보자. 소리말은 다른 낱말에 비해 한 뿌리에서 여러 갈래로 쓰임새가 자세히 나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쓰임새’라는 낱말을 여러 상황의 꾸밈을 받기 위해서는 다른 꾸밈말의 받아야 하고, ‘촐랑 촐랑’이라는 흉내말에 깊이나 무게감을 주기 위해 ‘출렁 출렁’으로 갈래가 나뉜다. 그러나, 소리말 중 ㅎ 울림을 쓰는 웃는 소리말은 하하, 호호, 히히, 헤헤, 허허, 후후, 흐흐, 햐햐처럼 매우 다양하다. 이들 각각이 전부 웃는다는 상황 전달만 하는데 그치는 것은 아니다. 각각은 미묘한 느낌 차이가 있는데 웃는 소리에 왜 웃는지에 대한 뜻이 있기 때문이다. 사전에 나온 뜻으로 보면, ‘흐흐’는 데살궂게 웃는 모양이거나 은근히 웃는 소리, ‘하하’는 기뻐서 웃는 입을 벌리고 웃는 소리, ‘호호’는 입을 작게 벌리고 예쁘게 웃는 소리라고 나와있다. 이런 뜻과 쓰임새를 안다면, 같은 말이나 글이라도 보다 정확하게 의도나 감성을 전달할 수 있다.

소리말이 감성을 전달하는 기능은 연구 결과에서도 나타났다. 한종혜 교수의 의성어(Onomatopoeia)에 대한 뇌영상 연구 결과를 보면 소리말을 들었을 때 우리 뇌는 단순히 말을 듣던 때와는 다른 뇌 영역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심지어 소리가 없는 글자로만 된 소리말을 봤을 때도 뇌의 특정 영역이 활성화되며 반응을 했다. ‘개굴 개굴’이라는 말을 듣거나 보았을 때 우리 뇌는 실제로 개구리를 접하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는 말이다.

이렇듯 소리말은 말과 비교했을 때 글에 부족할 수 있는 감성 등을 전달하는데 많은 역할을 한다. 글로만 ‘하하하하’라고 쓴다면 웃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말로 억양이나 강세를 나타내거나 얼굴 표정, 몸동작까지 나타낸다면 ‘하하하하’라고 웃어도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아니라는 감성 전달이 가능하다. 소리말은 이처럼 말이나 글의 뜻 전달력을 많이 높인다.
하지만, ㅎ 소리 울림으로 웃는 소리를 내기 위해 중성이나 종성을 떼고 초성(자음)만으로 소리말을’ㅎㅎ’라고만 쓰고 이것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는지 물어보면 ‘하하’라고 읽는 사람도 있고 ‘흐흐’라고 있는 사람도 있고 ‘호호’라고 읽는 사람도 있다. 물론, 앞뒤 말을 보고 상황에 맞게 이해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사람들의 생각이 다를 때가 많다.

ㅎ이 갖고 있는 소리 울림 느낌에 중성(모음)이 붙어 소리를 흉내내 만든 ‘하하’라는 소리말을 만든다. 모음 ㅏ는 입을 둥글게 벌리고 내는 소리이다. 이 둘이 붙어 입을 벌리고 기분 좋게 웃는 소리말인 하하가 되는데 중성을 떼버리자 그 본뜻, 즉 감성을 잃고 만다.

말을 풍부히 하는 것은 적극 찬성한다. 그래서 나는 그림말(Emoticon)을 찬성한다. 그림말은 소리말이나 흉내말처럼 글자의 부족한 뜻 전달력을 높이는 긴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는 일이라서 별다른 감성없이 하는 인사말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 라는 그림말을 써붙여 감성을 덧붙였고, 이 그림말은 소리가 없기 때문에 말이라 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그림의 뜻 전달력을 감안하면 소리말이나 흉내말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를테면, 싱긋, 방긋으로 바꿔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음말은 말을 단조롭게 하며 감성(뜻) 전달력을 떨어뜨린다. 익숙치 않은 사람의 경우 자음말을 쓴 사람의 본뜻과는 전혀 다르게 뜻을 받아들여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 ㅎㅎ나 ㅋㅋ가 가진 쓰임새를 몰라서 오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에 동조하여 기분 좋게 웃는 것인지 음흉한 뜻을 품고 웃는 것인지 비웃는 것인지 쉽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말은 다른나라 말들과 비교했을 때 감성이 풍부하다는 평을 받는다. 우리의 보석같은 많은 문학이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 것은 우리말이 갖고 있는 그 풍부하고 짙은 감성을 다른나라 말로 표현해내기 매우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노란 색 느낌을 노랗다, 샛노랗다, 누렇다, 누르스름하다, 누리끼리하다, 노릇 노릇, 노른끼 등 매우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말의 감성 표현력은 뛰어나다. 우리 흉내말이 2196개에 달한다고 하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말을 더 우리말답게 쓸 수 있고 말뜻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자음말은 우리말의 감성을 두루뭉술하게 해치고 뜻 전달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자음말을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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