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말 ] 꼬리표를 달고 있는 글들

난 자음말을 반대한다.

나는 자음말을 반대한다. 나는 소리말(의성어)이나 흉내말(의태어)을 자음말로 나타내는 것을 더욱 반대한다. 자음말이란 자음만으로 말의 뜻을 쓰는 줄임말 중 하나이다. 예로, ㅎㅎ나 ㅋㅋ, ㅇㅇ 등을 들 수 있다.

자음말은 쓰임새 특성상 대체로 소리말인 경우가 많다. 흉내말이나 뜻말을 자음만으로 본래 뜻을 전달하는데는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뒤뚱 뒤뚱’이라는 흉내말을 ㄷㄸㄷㄸ이라고 적었을 때, 이것이 대체 무슨 말이고 어떤 의도로 적었는지 알 수 없다. 두루 ㄷㄸㄷㄸ를 뒤뚱 뒤뚱으로 알아듣자는 약속이 이뤄지기 전엔 알기 어렵다. 마찬가지 이유로, ㅇㅁㄴ이라는 자음말이 ‘어머나’하는 감탄말인지 ‘어머니’라는 낱말인지 알기 어렵다.
소리말은 흉내말 등과 비교하면 좀 더 쉽다. 사람들이 꽤 흔히 쓰는 ㅎㅎ라는 말이나 ㅋㄷㅋㄷ이라는 말을 썼을 때 대체로 쉽게 웃는 소리를 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뜻말은 말 자체가 가진 뜻 때문에 자음말로 줄이기 어렵고, 흉내말은 흉내 대상을 가리켜 써야 하는 제약이 있지만, 소리말은 앞뒤 말에 의존하는 정도가 적은 감탄말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ㅎㅎ라는 자음말을 봤을 때 ‘하하’인지 ‘흑흑’인지 쉽게 구분하긴 어렵지만, 두루 쓰이는 쓰임새가 웃는 소리이고 이때문에 ‘흑흑’이라는 쓰임새로 ㅎㅎ를 썼는지는 앞뒤 말을 보면 된다.

자음말로 많이 줄여 쓰는 소리말을 잠시 살펴보자. 소리말은 다른 낱말에 비해 한 뿌리에서 여러 갈래로 쓰임새가 자세히 나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쓰임새’라는 낱말을 여러 상황의 꾸밈을 받기 위해서는 다른 꾸밈말의 받아야 하고, ‘촐랑 촐랑’이라는 흉내말에 깊이나 무게감을 주기 위해 ‘출렁 출렁’으로 갈래가 나뉜다. 그러나, 소리말 중 ㅎ 울림을 쓰는 웃는 소리말은 하하, 호호, 히히, 헤헤, 허허, 후후, 흐흐, 햐햐처럼 매우 다양하다. 이들 각각이 전부 웃는다는 상황 전달만 하는데 그치는 것은 아니다. 각각은 미묘한 느낌 차이가 있는데 웃는 소리에 왜 웃는지에 대한 뜻이 있기 때문이다. 사전에 나온 뜻으로 보면, ‘흐흐’는 데살궂게 웃는 모양이거나 은근히 웃는 소리, ‘하하’는 기뻐서 웃는 입을 벌리고 웃는 소리, ‘호호’는 입을 작게 벌리고 예쁘게 웃는 소리라고 나와있다. 이런 뜻과 쓰임새를 안다면, 같은 말이나 글이라도 보다 정확하게 의도나 감성을 전달할 수 있다.

소리말이 감성을 전달하는 기능은 연구 결과에서도 나타났다. 한종혜 교수의 의성어(Onomatopoeia)에 대한 뇌영상 연구 결과를 보면 소리말을 들었을 때 우리 뇌는 단순히 말을 듣던 때와는 다른 뇌 영역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심지어 소리가 없는 글자로만 된 소리말을 봤을 때도 뇌의 특정 영역이 활성화되며 반응을 했다. ‘개굴 개굴’이라는 말을 듣거나 보았을 때 우리 뇌는 실제로 개구리를 접하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는 말이다.

이렇듯 소리말은 말과 비교했을 때 글에 부족할 수 있는 감성 등을 전달하는데 많은 역할을 한다. 글로만 ‘하하하하’라고 쓴다면 웃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말로 억양이나 강세를 나타내거나 얼굴 표정, 몸동작까지 나타낸다면 ‘하하하하’라고 웃어도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아니라는 감성 전달이 가능하다. 소리말은 이처럼 말이나 글의 뜻 전달력을 많이 높인다.
하지만, ㅎ 소리 울림으로 웃는 소리를 내기 위해 중성이나 종성을 떼고 초성(자음)만으로 소리말을’ㅎㅎ’라고만 쓰고 이것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는지 물어보면 ‘하하’라고 읽는 사람도 있고 ‘흐흐’라고 있는 사람도 있고 ‘호호’라고 읽는 사람도 있다. 물론, 앞뒤 말을 보고 상황에 맞게 이해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사람들의 생각이 다를 때가 많다.

ㅎ이 갖고 있는 소리 울림 느낌에 중성(모음)이 붙어 소리를 흉내내 만든 ‘하하’라는 소리말을 만든다. 모음 ㅏ는 입을 둥글게 벌리고 내는 소리이다. 이 둘이 붙어 입을 벌리고 기분 좋게 웃는 소리말인 하하가 되는데 중성을 떼버리자 그 본뜻, 즉 감성을 잃고 만다.

말을 풍부히 하는 것은 적극 찬성한다. 그래서 나는 그림말(Emoticon)을 찬성한다. 그림말은 소리말이나 흉내말처럼 글자의 부족한 뜻 전달력을 높이는 긴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는 일이라서 별다른 감성없이 하는 인사말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 라는 그림말을 써붙여 감성을 덧붙였고, 이 그림말은 소리가 없기 때문에 말이라 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그림의 뜻 전달력을 감안하면 소리말이나 흉내말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를테면, 싱긋, 방긋으로 바꿔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음말은 말을 단조롭게 하며 감성(뜻) 전달력을 떨어뜨린다. 익숙치 않은 사람의 경우 자음말을 쓴 사람의 본뜻과는 전혀 다르게 뜻을 받아들여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 ㅎㅎ나 ㅋㅋ가 가진 쓰임새를 몰라서 오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에 동조하여 기분 좋게 웃는 것인지 음흉한 뜻을 품고 웃는 것인지 비웃는 것인지 쉽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말은 다른나라 말들과 비교했을 때 감성이 풍부하다는 평을 받는다. 우리의 보석같은 많은 문학이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 것은 우리말이 갖고 있는 그 풍부하고 짙은 감성을 다른나라 말로 표현해내기 매우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노란 색 느낌을 노랗다, 샛노랗다, 누렇다, 누르스름하다, 누리끼리하다, 노릇 노릇, 노른끼 등 매우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말의 감성 표현력은 뛰어나다. 우리 흉내말이 2196개에 달한다고 하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말을 더 우리말답게 쓸 수 있고 말뜻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자음말은 우리말의 감성을 두루뭉술하게 해치고 뜻 전달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자음말을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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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입에 붙자 글이 눈에 붙었다

‘바라다’는 말이 있다.
「 나는 애플코리아에서 내게 맥북을 공짜로 주기를 바라고 있다. 」
이렇게 사용하며, 생각하는대로 이뤄지길 원한다는 뜻이다.

‘바래다’는 말이 있다.
「 책이 오래되어 껍데기 색이 바랬다. 」
이렇게 사용하며, 본디 빛깔이 옅어지거나 윤기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아주 많은 사람들은 ‘바라다’를 ‘바래다’로 잘못 쓰는 경우가 참 많다. 이를테면,
「 이번 달 말까지 돈을 주시길 바요 」
처럼, ‘바라다’를 ‘바래다’로 잘못 쓰는 것이다. 이 말을 제대로 쓰자면,
「 이번 달 말까지 돈을 주시길 바요 」
라고 해야 한다.

이렇게 잘못 쓰는 경우도 있다.
「 이번 달 말까지 돈을 주길 바다 」
‘바라다 + ~었다’를 ‘바래다 + ~었다’로 잘못 쓴 것이다. 이 말을 제대로 쓰면,
「 이번 달 말까지 돈을 주길 바다 」
라고 해야 한다.

‘바라다’와 ‘바래다’를 정확하게 구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간 입에 붙은 ‘바래다’ 를 떼기 위해 신경을 써왔다. ‘바랬다’와 ‘바래요’는 혀에 깊이 박혀 있어서 ‘바랐다’와 ‘바라요’라고 말을 할 때마다 어색함을 느꼈다.

다른 사람에게 ‘바라다’와 ‘바래다’를 구분해서 써야하며, 흔히 잘못 쓰는 ‘바랬다’와 ‘바래요’를 지적한 적이 있었다. 그럴 때면 볼멘, 때로는 당당한 목소리로 내게 반박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내게 설득 근거로 내세우는 말은 어차피 서로 알아들으면 그만이라는 의견과 입과 귀에 익지 않아 어색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난 앞의견은 무시했지만, 뒷의견은 공감했다. 두 말을 구분해서 쓰자고 이야기 한 나도 어색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두 말을 구분해서 쓴 횟수도 점차 늘었다. 어느 날, 신경도 의식도 쓰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내 입에서 ‘바라요’라는 말이 나왔다. ‘바래요’라고 하지 않으려고 신경 썼었는데 어느 덧 원래 ‘바라요’라는 말을 써온 것 마냥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바라요’라는 말이 나와서 적잖이 놀랐다.

더 신기한 현상은 말이 입에 붙자 ‘바랐다’와 ‘바라요’ 글자가 눈에도 아주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이었다. ‘바라요’가 옳은 표현이니 어쩌니 하는 의식은 아예 들지 않고 원래 ‘바라요’라고 눈에 인이 박힌 것처럼 아무 감흥 없이 ‘바라요’가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간 틀린 표현에 익숙해져 맞는 표현을 어색해했다. 이는 애초 틀린 표현이 좀 더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입에 착착 달라붙을만큼 적절해서 익숙한 것이 아니라 단지 주변에 틀린 표현을 쓰는 사람이 많고 그것을 당연하게 주고 받아들여서 생긴 현상이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뜻이 서로 더 잘 통하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깐깐하게 구분해서 쓸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깐깐하게 구분해서 써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우리 말과 글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구분 지을 수 있는 말이 있는데 ‘바래요’를 ‘바래요’와 ‘바라요’ 뜻을 함께 가진 말로 사용하는 걸로 깨우치게 해선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다른 나라 사람일수도 있고 미래의 내 자식일수도 있다. 익숙하지 않고 입과 눈에 붙지 않아서 어색하게 쓰거나, 아예 틀린 표현을 써서 이들에게 오해나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신경쓰고 고쳐나가며 바른 말과 글을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야기를 나눌 때 상대방이 내 생각의 30%라도 이해하면 상당히 말을 잘하는 것이라 한다. 그만큼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상대방에게 전하기 어렵다.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는데 꼭 필요한 말과 글. 보다 정확한 말과 글을 써서 사소하다면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오해를 고쳐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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